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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 "회화, 찬밥이어도 괜찮아… 즐거우니까" Feb 12, 2013

조선일보/ 곽아람 기자

2013.02.12

 

 

 

데이비드 살리의 1983년작‘테니슨’. /ⓒDavid Salle

 

'80년대 新표현주의 대표작가' 데이비드 살리, 내달 첫 한국 개인전
나에게 그림은 '놀이' 관객과 교감하면 돼
화면 분할하는 이유? 삶은 동시다발이니까

 

 

▲태풍에 휩쓸러 해변에 떠밀려 온 철사 뭉치와 침대위에 널브러진

 여체를 한 화면에 담은 신작 앞에 앉은 살리. 그는 "카메라를 쳐다봐 

달라"는 기자의 주문에 "때론 카메라를 똑바로 보지 않는 편이 

더 좋은 사진이 나온다"며 끝내 카메라를 직시하지 않았다.

 


 데이비드 살리의 1983년작‘테니슨’. /ⓒDavid Salle "내 그림이 80년대에만 유효하다고? 만일 그렇게 생각한다면, 마네(Manet·1832~1883)의 '올랭피아(Olympia)'(1863)가 현대에는 무의미하다고 말하는 것과 똑같다. 오늘날 '올랭피아'는 작품이 처음 전시됐던 19세기만큼 쇼킹하게 여겨지진 않지만, 여전히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작품'으로 여겨지고 있다. 내 작품도 마찬가지다."

 

6일(현지시각) 밤 뉴욕 브루클린. 사방에 그림이 가득 걸린 작업실에서 깡마른 체구의 화가가 단호하게 말했다. 데이비드 살리(Salle·61). 개념미술과 미니멀리즘이 세계 미술계를 지배했던 1980년대, '회화의 부활'을 내걸고 등장해 인기를 끈 '신표현주의' 대표 작가다. 그의 첫 한국 개인전이 내달 15일~4월 14일 서울 창성동 리안갤러리 서울, 4월 25일~5월 18일 대구 대봉동 리안갤러리 대구에서 열린다.

 

―미니멀리즘이 주류이던 1980년대에, 왜 구상화를 그렸나?

 

"예술가는 자신이 속한 '시대'에서 벗어나 작업할 수 있어야 한다. 시대적 경험과 다른 경험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몇몇 미니멀리즘 작가를 매우 존경하지만, 그들의 방식을 따를 필요는 없다고 느꼈다. 내 관심사는 오직 '재현으로서의 이미지'였다."

 

―하나의 화면을 여러 개로 분할해 연관 없어 보이는 여러 이미지들을 뒤섞어 보여주는 기법으로 주목받았다. 왜 그렇게 그렸나.

 

"우리의 삶이란 게 그런 식으로 움직이니까. 수많은 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게 인생 아닌가. 그림이 '눈의 경험'이라는 관점에서도 그렇게 그리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 한 화면에 여러 사건이 펼쳐질 때, 눈은 세계의 복잡성을 경험하기 위해 활발하게 움직이니까."

 

―지금 당신 작업실 벽엔 폭풍에 휩쓸려 해안에 밀려온 철사줄과 침대 위에 널브러진 여자를 한 화면에 그린 캔버스가 걸려있다. 캔버스에 담긴 상이한 이미지들은 어떤 관계인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와 같다. 인간은 누구나 서로 다르면서도 닮은 구석이 있지 않나."

 

 태풍에 휩쓸려 해변에 떠밀려 온 철사 뭉치와 침대위에 널브러진 여체(女體)를 한 화면에 담은 신작 앞에 앉은 살리. 그는 “카메라를 쳐다봐 달라”는 기자의 주문에“때론 카메라를 똑바로 보지 않는 편이 더 좋은 사진이 나온다”며 끝내 카메라를 직시하지 않았다. 


 

―이번 첫 한국 개인전은 최근작 위주로 꾸며진다 들었다. 한국 관객이 당신 작품에서 뭘 느끼길 바라나?

 

"여태껏 관객이 내 작품에서 무언가 느끼길 바란 적이 없다. 나는 철저히 나 자신의 흥미를 위해 작업한다. 다만 관객이 내 작업을 '놀이'라 생각하고 봐 줬으면 좋겠다."

 

―그림을 종종 시(詩)에 비유해 왔다. 바닥에 누운 인체 위에 영국 유명 시인의 이름을 적은 대표작 '테니슨'(1983)도 그렇다. 그런데 테니슨 특유의 서사성이 그림에선 전혀 드러나 있지 않다.

 

"그림에 적힌 글자와 이미지 간의 상이성이 그 그림의 핵심이다. 너무나 다른 두 가지가 결합해 만들어내는 '제3의 것', 그리고 그것이 주는 '놀라움'을 표현하고 싶었다. 테니슨 시의 핵심은 우울감이다. 우울은 모든 것이 덧없을 때 찾아온다. 나는 덧없는 육체를 통해 덧없는 우울을 그려냈다."

 

―요즘 미술계도 당신이 이단아 취급을 받았던 80년대와 비슷하다. 젊은 작가들이 개념·설치미술에만 몰두할 뿐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

 

"예술가가 되는 방법은 많다. 나는 예술가가 되는 최상의 길이 그림 그리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결국 선택의 문제다. '그릴 것인가 말 것인가'를 고민하기보다는 '내가 왜 이 길을 택했나'에 대해 질문하는 게 더 중요하다."

 

―당신은 왜 그리나.

 

"이보다 더 재미있는 게 없으니까, 이보다 더 만족스러운 게 없으니까, 이보다 더 잘하는 게 없으니까. 나는 열 살 무렵 그림을 시작했다. 내 삶과 그림이 아주 깊이 결부돼 있다고 느꼈다. 아버지는 사진가였고, 어머니는 주부였는데, 두 분 모두 그림을 아주 좋아했다." 

 

☞데이비드 살리(Salle)

 

1952년 미국 오클라호마주 노먼 출생. 캘리포니아 아트 인스티튜트에서 수학했다. 80년대, 능란한 붓질과 강렬한 색감의 그림으로 회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 화가로 주목받았다.

 

줄리안 슈나벨과 함께 미국 신표현주의의 대표 기수. 대표작으로 ‘테니슨’(19 83), ‘멕시코의 밍거스’(1990) 등이 있다.

 

 

https://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2/11/201302110133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