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수용 기자
2009.03.19
미술작품 130억원어치 대구 온다
20일부터 리안 갤러리에서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45) 전시회가 열린다. 세계에서 가장 작품 값이 비싼 생존 작가이자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 동물 몸을 토막 내 포름알데히드에 담그거나 인간의 해골을 백금으로 본 뜬 뒤 8천601개의 다이아몬드로 장식한 작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그의 오리지널 작품들이 대구에서 선보인다는 것만으로도 뉴스거리인 셈이다.
◆엉뚱하고 발칙한 상상
개막을 앞두고 준비에 한창이었다. 바쁘니까 천천히 오라는 리안갤러리 김혜경 큐레이터를 졸라서 미리 맛보기에 나섰다. 빨강, 노랑, 파랑이 칠해진 캔버스 위에 나비를 박제하듯 붙여놓은 작품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유명한 나비 시리즈의 중 하나인 '성삼위일체'(Trinity). "죽은 나비가 성삼위일체와 무슨 상관이냐?"는 기자의 물음에 큐레이터는 안쓰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실 앞서 "그림 값이 전부 얼마냐?"고 물었을 때 살짝 그런 표정이 스쳐가긴 했다.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은 제목이 중요합니다. 그림이 주는 느낌과 함께 제목을 연결시키는 것이 중요하죠." 물감의 덫에 사로잡힌 나비를 보며 불쌍하다고 말하자, "어차피 죽을 건데요"라고 답한다. 큐레이터의 싸늘한 반응은 이유가 있다. 데미안 허스트는 '죽음'을 커다란 주제로 삼았다. 인정하기 싫지만 결국은 모두 죽고, 죽음을 늘 앞에 두지만 두려워할 줄 모르는, 혹은 두렵지 않은 척 하는 인간을 그린다. 백금 해골 위에 다이아몬드로 장식한 작품은 인간의 죽음과 끊임없는 욕망을 뜻한단다. 그런 '깊은 의미'를 담은 작품이 1천억원에 육박하고, 재료비만 200억원 가량 들었다니 그 역시 아이러니다.
아래층에는 '약국'(Pharmacy) 시리즈와 컬러풀한 동그란 점들로 구성된 '돗'(dot) 그림들이 있다. 약 상자에는 진통제가 그득하다. "자기가 담고 싶은 약을 담으면 됩니다. 우리는 영국에서 직접 약을 공수받아서 어제 배열했습니다." 날짜가 표시된 칸마다 소복이 쌓여있는 형형색색의 진통제들은 매일매일 발버둥치지만 궁극적인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을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색깔이 다른 동그라미가 좌우로 정렬된 작품은 '진통제 성분별로 고유의 색깔(약학에서 정해 놓은)을 그려놓은 것'이란다. 제목을 묻자 큐레이터가 당황한다. 자료를 받고 보니 당황할 법 하다. '나프톨벤진', '살리실로일 하이드라자이드'. 영어사전에도 없는 단어다.
작품의 값어치에 집착하는 기자에게 큐레이터가 결국 손을 들었다. "이번 전시작을 모두 합치면 130억원 정도 될 겁니다." 데미안 허스트가 제시한 가격이자 공인(?) 가격이란다. "국내 컬렉터가 소장한 작품은 일정액의 임대료를 지불하고, 영국에서 가져온 작품은 보증금과 일정액의 수수료, 선적료 등이 듭니다. 지난 2년간 준비한 이번 전시회에 수천만원이 들었죠." 작품 한 점당 최소한 수억~수십억 원에 이르는 작품이 판매되기는 힘들 터. 수익은 어떻게 낼까? "그러니까 많이 보러 오셔야죠. 대구에서 어렵게 마련한 만큼 많은 분들이 찾아주시면 좋겠습니다." 결국은 돈 내고 보라는 얘기. 어른이 8천원인데, 외국 전시장 가는 생각하면 아깝지 않겠다.
◆도움이 될 만한 기타 정보들
이전 시대까지 미국이 주도하는 미술 시장의 흐름을 바꿔놓은 데미안 허스트는 1990년대 이후 영국 현대 미술의 부활을 이끌며 'yBa'(young British artists : 젊은 영국 작가들)를 전설로 만든 주인공이다. 송아지, 상어, 젖소 등의 동물 몸을 토막 낸 뒤 포름알데히드에 담그는 '자연사' 연작으로 유명해졌다. 이번 전시회에는 국내 최초로 선보이는 '죽음의 공포'(The Fear of Death·해골 위에 다이아몬드 대신 파리를 붙여놓은 작품) 등 오리지널 작품과 '스핀 페인팅' 습작 판화를 포함해 50여점이 선보인다. 전시명은 're-Birth'(부활)로 데미안 허스트 작품의 키워드인 존재와 죽음에 대한 근원적 공포와 두려움에 상반되는 용어다. 전시 기간은 다음달 18일까지이며, 관람 시간은 화~일요일(오전 10시~오후 6시). 다음달 7일에는 홍익대 예술학과 전영백 교수의 특강이 진행된다. 053)424-2203
김수용기자 ksy@ms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