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장하나 기자
2014. 03.16
에르토리코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부모는 얻을 수 있는 거울은 죄다 구해서 집안을 최대한 화려하게 꾸며놨다. 집은 엄청 좁았지만, 곳곳에 거울이 있어 실제보다 넓어 보였다.
싸구려 소파에는 비닐을 씌워 번쩍거리게 했고, 액자와 조명 등 다른 실내 장식도 무조건 많이, 화려하게 해 놨다. 비록 주머니에 돈은 없었지만 화려한 실내 장식을 해 놓으면 부유하게 사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시카고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 디자인(41·Dzine·본명 카를로스 로롱)의 작품에는 이런 그의 어릴 적 기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통의동 리안갤러리 서울에서 열리는 디자인의 개인전에는 샹들리에와 트로피, 페인팅 등 신작 10여 점이 소개된다. 크리스털과 순금 등 화려한 장신구로 치장된 트로피는 미국 사회에 정착해 온 이민자들에게 바치는 것이다. 음악가였던 아버지가 어느 대회에 나가 트로피를 받아 왔던 어린 시절 기억에서 비롯됐다.
"트로피는 우리가 들인 노력에 대한 영광스러운 대가이자 자랑스럽게 획득한 기념품"이라는 것이 작가의 설명이다.
화려함을 강조하려고 일부러 여러 점의 트로피를 한꺼번에 진열해놨다.수많은 거울로 꾸며진 휘황찬란한 샹들리에 역시 작가가 "마치 베르사유 궁전에 있는 것 같았다"고 기억하는, 집 안에 있던 샹들리에에서 영감을 얻었다. 식탁은 낡고 싸구려였지만 위에 걸린 샹들리에는 여느 궁전 샹들리에에 버금갔다고 했다.
가장 중요한 실내장식 중 하나였던 거울은 모자이크처럼 균열을 만들고 그 사이를 크리스털로 채웠다.
미국 시카고에서 태어났지만 오롯이 미국인으로 살아가기는 어려웠던 작가 자신의 이중적 정체성을 화려한 실내장식으로 대체했던 과거의 기억과 연결지어 표현한 것이다.
최근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개인적인 기억을 토대로 만든 작품이지만 보는 사람도 자신의 기억과 연관지으며 상호 작용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4월 26일까지. ☎ 02-730-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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