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최세정 기자
2012.06.07
권부문 사진전 리안갤러리 내달 7일까지
사진을 찍기 위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루 수십 번 셔터를 누르는 시대, 한 사람이 하루에 수백 장의 이미지를 소비하는 시대다. 이미지 과잉의 이 시대에, 사진작가 권부문은 ‘사유로서의 사진’을 말한다.
“이미지만으로 철학적 힘을 가질 수 있어요. 책을 읽으며 철학을 고민하 듯 사진을 찍으며 철학 하는 거죠. 이 기능은 사진 이미지를 대량 소비하는 시대, 아주 중요한 사진의 역할입니다.”
그는 “이미지를 통해 삶을 겪어냈다”고 말한다. 그는 2000년 겨울, 무작정 속초로 들어가 지금까지 속초의 산과 바다를 다니며 사진을 찍고 있다. 그가 바다와 숲에서 보낸 시간은 그에게 오롯이 응답한다. 짧은 찰나, 자연은 그에게 속살을 보여주고 그는 노련하게도 그 장면을 잡아낸다.
그는 자신의 사진이 메시지를 위한 도구가 아니라 성찰의 도구라고 강조한다. 사진에서 ‘목적’과 의도된 메시지를 걷어낸다. 그러면 관람객은 그 앞에서 열린 태도로 그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오대산’ 시리즈는 오랫동안 숲에 머무르면서 그가 만난 숲이다. “한국의 숲에는 굉장한 혼돈이 있어요. 우주만큼 혼란스럽다고 할까요. 그 기막힌 혼란을 자꾸 대면하니 굉장히 명료해지더군요. 사진 프레임에 담기엔 매우 까다롭지만, 숲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철학적 힘이 있죠.”
그의 사진은 스케일이 크기로도 유명하다. 3m가 넘는 사진 앞에 서 있노라면, 마치 관람객이 숲 속에 들어온 듯 선명하고도 명징한 이미지를 보여준다. 지금까지 숲의 이미지는 사라지고, 권부문이 보여주는 숲의 이미지로 가득 찬다. 우리는 달력사진처럼 정형화된 이미지 이외에는 숲을 잘 알지 못했다. 이젠 거꾸로 숲에서 권부문의 사진을 떠올릴 것 같다. ‘내 작품에서 인간의 자리는 이미지 속이 아니라 이미지 앞, 내가 카메라와 함께 섰던 그 자리이며,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자리다’고 강조한다.
그는 이미지를 위해 무한히 기다린다. 그의 ‘속초에서 별보기’ 시리즈를 보면, 우리가 매일 바라보는 밤하늘이 얼마나 다채로운 색채와 신비로움을 간직하고 있는지 새삼 발견할 수 있다. 작가는 기다리면서 느닷없이 다가오는 이미지를 만난다. 특히 이번 전시에는 각기 다른 나라와 장소에서 찍은 별자리 사진을 영상으로 만든 작품을 선보인다. 우주의 한가운데 있는 것 같은 신비로운 기분이다.
대구가 고향인 작가는 1970년대 대구에서 현대미술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 활동하는 등 현대미술의 중요한 지점을 통과해왔다. 그는 현대미술의 담론 속에서 치열하게 자신만의 색과 철학을 구축해왔다. 지금은 제주도의 숲을 촬영하고 있다.
“결국 잘 살아내는 것이 중요하죠. 습관화되지 않고 늘 무장해제 해야 하는 사진의 특성이 오히려 저의 삶을 이끌어온 게 아닐까요.” 리안갤러리에서 7월 7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는 리안갤러리의 전신인 시공갤러리 전시 이후 10년 만에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리즈인 ‘속초에서 별보기’, ‘오대산’ 시리즈 작품을 선보인다. 053)424-2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