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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상 "포스트 단색화가? 난 한국적 추상미술 3세대" Aug 30, 2024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서울 종로구 리안갤러리 서울에서 열린 김택상 개인전 'Time Odyssey(타임 오딧세이)'에 선보인 신작 'FLOW' 전시 전경. 2024.08.26. pak7130@newsis.c

서울 종로구 리안갤러리 서울에서 열린 김택상 개인전 'Time Odyssey(타임 오딧세이)'에 선보인 신작 'FLOW' 전시 전경. 박진희 기자

 

 

화가 김택상(65)은 의외였다. 맑고 옅은 조용한 그림과 달리 '반항아 기질'을 보였다. 지독한 탐구주의자였다. "제일 좋아하는 노래 중에 하나가 렛잇비(Let It Be)에요. 내버려 두면 되거든요. 제 작업에 비밀이 있다고 한다면 '렛잇비'입니다."

26일 서울 통의동 리안갤러리 서울에서 만난 그는 4년 만에 신작 '플로우(FLOW)'시리즈를 선보였다. "감동이 없으면 예술이 아니다"고 강조하는 그는 자신의 작품에 대한 자신감이 넘쳤다. 김택상은 '물 빛 회화 Breathing Light' 연작으로 유명하다. 빛과 색을 물로 담은 '스밈의 미학'으로 국내외 컬렉터를 사로잡았다. 물을 머금은 은은한 색의 작업은 '숨 쉬는 빛의 회화'로 각광받으며 '단색화 후세대 대표 작가'로 꼽혔다.
스며드는 물빛의 명상적인 작업과 달리 신작 '플로우'는 '발광의 미학'이다. 머금은 빛을 마치 '폰딧불이'처럼 발현 시킨다. 어둠 속에 연출한 플로우 연작은 핀 조명을 받아 '은은한 빛무리'로 빨아들인다. 보는 순간 시공간에 떠있는 무중력 상태로 느껴지기도 한다.

 

 

 

 

이번 전시 제목 '타임 오딧세이'는 내가 좋아하는 영화 감독인 스탠리큐브릭의 영화 '2001 Space Odyssey'에서 영감을 받아 정했다. 작업 중 새로운 행성이나 성운과 같은 느낌의 작업이 나오면(발견하면) 마치 천문학자가 새로운 행성을 발견해서 그 행성의 이름을 명명하듯이 나도 그림에 마치 새롭게 발견한 행성처럼 PlanetA16(예) 이렇게 이름을 붙였다. 여기서 Planet는 행성을 의미하고, A는 August(8월)의 줄임말 A이고, 16은 발견된 날짜를 의미한다.

화이트 큐브를 벗어나 공간 전체로 확장한 이번 전시는 다양한 은하들에 공존하는 우주의 오로라들을 작품으로 옮긴 듯한 ‘작품을 타고 떠나는 행성 여행’을 보여준다.

 

 

투명한 스크린 같은 '플로우' 신작의 비밀

 

물로 작업하는 것은 이전과 동일하다. 평면 캔버스인데 비밀이 있다. 공개하지 못할 영업 비밀은 아니고, 일단 캔버스는 내가 개발했다. 브라켓도 개발을 했다. 내가 원하는 작품을 위해서다. 물론 나 혼자 개발한 것은 아니다. 동료 작가 중에 이진우 작가가 있는데, 그의 절친 중에 섬유 전문가가 있다. 내가 재료를 갖고 고민 고민하는 걸 보고 연결해줬다. 그래서 4년 전에 만나서 상의를 하고 (빛이 발광하는)캔버스 개발을 시작했다. 4년 동안 고생 끝에 만들어냈다.
한국에서는 만들 수 없었다. 대형 작품을 선호해서 폭이 270cm는 나와야 했다. 개발자가 지난 수 년 간 중국을 오가고 내가 또 수 없는 실험 과정을 거쳐 작년에 비로소 만들었다. 돈도 억대가 들었다. 나한텐 R&D예산이다. 지금은 아주 편안하데 가벼운 마음으로 작업하고 있다. 그 캔버스가 나왔기 때문에 이번 신작 작업을 할 수 있었다. 곰팡이 방지 처리까지 했다.

내가 쓰는 천은 사실은 '수채화 용 캔버스'다. 일반적으로 수채화용 캔버스가 있다는 걸 잘 모른다. 왜냐하면 캔버스라고 하는 것은 원래 서양에서 개발된 것이기 때문에 물감이 얹혀지는 데 특화돼 있는 재료로 스미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내가 원하는 작업을 하기 위해서 수많은 실험을 했고 결국 찾아냈다. 이번 빛을 내는 캔버스 사용은 내가 국내 최초다. 보다 많은 작가들이 쓰면 좋겠다. 발색이 너무 좋다.

 

 

 

 

후기 단색화가? "관심 없다"

 

오해가 무진장 많은 것 같다. 나는 스스로를 단색화가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후기 단색화라고 얘기 한 적도 없다. 미술사가들은 당대의 미술 현상을 카테고리화 한다. 시대를 정리하는 차원에서 정리하는 거다. 하지만 나 김택상은 내가 단색화에 속하는지, 담화에 속하는지 관심 없다. 반면 이런 염려와 걱정은 있다. 한국 미술계에 서식하는 작가로서, 더 잘 됐으면 좋겠고 글로벌화되길 바란다.

나는 한국적 추상미술이라는 틀로 봐야 한다. 근대미술관이 만들어지면 한국적 추상미술 계보를 만들어야 한다. 김환기, 유영국이 1세대, 윤형근, 박서보, 하종현이 2세대, 그리고 내 세대가 3세대다. 포괄적인 정리가 이뤄지면 한국적 추상미술의 1세대, 2세대, 3세대의 계보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담론이 풍성해진다.
추상화를 하는 내 작업만 해도 선배 세대와 관계성이 있다. 김환기, 곽인식 작가를 한번도 만난 적이 없다. 하지만 '나하고 비슷한 감수성을 갖고 있네'를 단박에 안다. 유영국 선생과도 동의하는 부분이 있다. 유영국 선생은 색을 서늘하게 잘 쓴다. 풍토와 연관이 있다. 나도 강원도 출신으로 추운 지역에 살다 보니 색을 서늘하게 쓴다. 어떤 분이 '그 지점을 자꾸 윤형근과 연결시켜서 이야기 하지만 유영국과도 관계가 있다며 그쪽으로 전시나 크리틱을 해보면 재미난 이야기꺼리가 나올거야'라고 말하는데 단박에 동의되더라.

 

 

빛 작업은?

 

구조 색과 관련된 것인데, 구조 색을 구현할려고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원하는 색을 쫓아가다 보니 방법론적으로 결과 되어진 거다. 작가들은 행동이 먼저 인 사람이다.

플로우 신작은 빛의 느낌을 강조하기 위해 블랑켓을 썼다. 벽에 띄운 이유는 비존재처럼 보이기 위해서다. 이렇게 작업하는 작가가 아니쉬 카푸어다. 핀 조명은 맞는 작업이 따로 있다. 내 작업은 구조색이라 발광하는 느낌을 낼 수 있다. 표면 아래는 입자가 납작해보이지만 대단히 많은 구조가 시간차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미세 공간에 빛이 들어가는거다. 그냥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라 철저하게 전략적으로 고려해서 나온 거다.

바탕에 칠한 건 아크릴 물감이다. 하지만 액상화된 물감을 쓰지 않는다. 물로 희석을 한다. 양동이에 물을 넣고 안료(물감)를 물로 해체한다. 중력에 의해서 입자들(알갱이)이 가라앉은 것을 쓴다. 박서보, 하종현 정창섭 등 단색화가들의 수행적 방법과 같다. 한국문화적 밈이다. 우리가 색을 다루는 방법이다. 고려청자에서 시작됐다. 청자는 내가 색을 다룬 방법과 똑같다. 고려청자의 비색이 나오는데 '아 내가 사용하는 방법이 선조들의 방법과 다르지 않구나'를 알았다.

빛을 다룬다는 입장에서는 같다. 하지만 터렐과 나는 기질이 다르다. 나는 '최소의 경비로 최대의 효과를 내야 한다'는 게 삶의 지표다. 서양 작가는 대규모 프로젝트다. 나는 애초에 안 한다. 차이는? 수련과 공력이 필요하다. 기계를 활용해서 3m를 뛰어넘을 수 있다. 그러나 장인이나 무술가들은 수련을 통해서 일반인은 못하는 경지를 보여준다. 거기에 맞는 근육이 만들어진다. 나는 그 쪽이다.
 

 

전시 하는 이유?

 

감동은 아무 때나 오는 것이 아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때 이때까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어떤 상황, 새로운 어떤 무엇을 맛을 봤는데 정말 처음 보는 맛을 봤을 때 우리가 감동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건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들이 갖고 있는 매커니즘이다. 감동을 받게 되면 그 다음 프로세스가 그걸 나누고 싶어한다. 이거 먹어 봤어? 거기 가봤어? 그렇게 진행이 된다. 나도 똑같다. 그러니까 내가 실험하고 시도한 일이지만 나에게 감동이 있었을 때 나도 감동을 받는다. 그랬을 때 그것을 나누고 싶어진다. 내가 우연히 발견한 `진짜 세상의 조그만 아름다운 조각`들을 관객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 같이 나누면 더욱 행복해지니까.

 

 

https://v.daum.net/v/20240827012740175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