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 : 실험미술의 대가인 원로 이건용 작가가 지난 12일 경기도 고양시 삼송테크노밸리 작업실에서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권현구 기자
우 : 신작 ‘바디스케이프 76-3-2024’, 2024, 캔버스에 아클릴릭, 73×91㎝. 리안갤러리 제공
이건용(82) 작가에게 지난해는 생애 최고의 해가 아니었을까. 7월에는 전속 화랑인 세계 톱 페이스갤러리 뉴욕점에서 첫 개인전을 했고, 9월부터는 미국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하는 ‘한국 실험미술 1960~1970년대’ 순회전에 참여했다. 그 바람에 팔순이 넘은 나이에 짧은 기간 뉴욕을 두 차례나 다녀오는 노익장을 과시했다. 뉴욕 체류 중에는 ‘달팽이 걸음’ 퍼포먼스를 세 차례나 시연했다.
연말부터 건강이 악화했다. 자신이 후원하는 제2회 국민일보 아르브뤼미술상 공모전 개막식에도 참석하지 못하고 가족을 대참시켰다. 그런데 기적처럼 봄, 여름이 지나며 몸이 조금씩 나아졌다. 그가 건강 회복 후 국내 첫 개인전을 갖는다. 리안갤러리 대구점에서 21일 개막해 12월 28일까지 여는 ‘이건용’전에서다. 앞서 페이스갤러리 스위스 제네바 점에서도 개인전(8월 28일~11월 6일)을 했고, 24년간 후학을 가르쳤던 국립군산대에 ‘이건용현대미술관’이 마련돼 개관전 ‘이건용, 정확한 반항’(10월16일~11월 8일)이 열렸지만 이번에는 의미가 다르다. 대구 전시에는 신작이 5점이나 포함됐기 때문이다. 제네바 개인전에는 신작이 1점이었고, 이건용현대미술관 개관전에는 신작이 아예 없었다. 다시 말하면, 리안갤러리 개인전은 상업화랑 전시로는 2년 만이라는 점,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는 현역 작가임을 입증하는 점 등에서 상징성이 있다.
전시에는 ‘신체 드로잉(바디스케이프)’ 연작 중 캔버스 뒤에서 선을 그리는 ‘바디스케이프 76-1’, 캔버스를 등 뒤에 두고 팔을 휘두름으로써 인체 모양이 되는 ‘바디스케이프 76-2’ 등을 중심으로 미공개작이 대거 나온다. 또 캔버스를 옆에 두고 한 팔씩 휘두름으로써 하트 모양이 되는 ‘바디스케이프 76-3’을 변형한 작품들이 신작으로 나온다.
작가는 건강이 회복되자 대작에 대한 의욕을 감추지 않았다. 과거 300호 작업도 했는데 이제 그 이상도 하고 싶다며 “신체의 족적을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작품의 크기 자체가 작가의 작업 환경이 되는 그런 작업을 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건강을 잃고 건강의 소중함도 깨달았지만 새로운 작업 스타일도 선물처럼 주어졌다. 작가는 손의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 공원이든 카페든 외출할 때면 스케치북과 마커 펜, 수채화 물감, 크레용 등을 들고 다닌다. 사람이든 풍경이든 스케치를 하고 그린다. 개념미술을 한국화한 실험미술 작업을 하며 수십 년간 등 돌렸던 구상 회화의 세계에 다시 발을 딛게 된 것이다. 또 매일매일 쌓이는 상품 포장지 등에 쓰고 남은 아크릴 물감을 사용해 신체 드로잉을 하는 작업도 활발히 한다. 종이도 물감도 쓰레기통에 들어가야 할 운명이었지만 그가 살려내듯 재활용하는 것이니 기후 위기 시대에 적합한 제작 방식인 셈이다. 12월에는 이런 작품들만 모아 서울 삼청동 두가헌에서 전시를 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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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 ㅣ 손영옥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