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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문화] 이건용 작가 건강 회복 후 첫 개인전… 노장은 건재하다 Nov 20, 2024

입력:2024-11-20 04:02

내달 28일까지 ‘이건용’전 열어
상업 화랑 리안갤러리 대구점서
신작 5점·미공개작 다수 선보여

실험미술의 대가인 원로 이건용 작가가 지난 12일 경기도 고양시 삼송테크노밸리 작업실에서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작가는 지난해 말 악화한 건강이 봄부터 서서히 회복돼 리안갤러리 대구점에서 21일부터 개인전을 열며 신작을 선보인다. 국내 상업 화랑에서 개인전을 열기는 2년 만이다. 권현구 기자

 

 

이건용(82) 작가에게 지난해는 생애 최고의 해가 아니었을까. 7월에는 전속 화랑인 세계 톱 페이스갤러리 뉴욕점에서 첫 개인전을 했고, 9월부터는 미국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하는 ‘한국 실험미술 1960~1970년대’ 순회전에 참여했다. 그 바람에 팔순이 넘은 나이에 짧은 기간 뉴욕을 두 차례나 다녀오는 노익장을 과시했다. 뉴욕 체류 중에는 ‘달팽이 걸음’ 퍼포먼스를 세 차례나 시연했다.



길이 15m의 길쭉한 캔버스 위를 은발의 노화가는 오리걸음으로 걸었다. 물감을 칠하면서 앞으로 걸으면 회화가 생성되지만, 동시에 자신의 맨발이 물감의 흔적을 지운다. 그렇게 세계 현대미술의 심장 뉴욕에 실험미술 간판 작가의 이미지를 강렬하게 인식시켰지만, 대가는 혹독했다.



연말부터 건강이 악화했다. 자신이 후원하는 제2회 국민일보 아르브뤼미술상 공모전 개막식에도 참석하지 못하고 가족을 대참시켰다. 그런데 기적처럼 봄, 여름이 지나며 몸이 조금씩 나아졌다. 그가 건강 회복 후 국내 첫 개인전을 갖는다. 리안갤러리 대구점에서 21일 개막해 12월 28일까지 여는 ‘이건용’전에서다. 앞서 페이스갤러리 스위스 제네바 점에서도 개인전(8월 28일~11월 6일)을 했고, 24년간 후학을 가르쳤던 국립군산대에 ‘이건용현대미술관’이 마련돼 개관전 ‘이건용, 정확한 반항’(10월16일~11월 8일)이 열렸지만 이번에는 의미가 다르다. 대구 전시에는 신작이 5점이나 포함됐기 때문이다. 제네바 개인전에는 신작이 1점이었고, 이건용현대미술관 개관전에는 신작이 아예 없었다. 다시 말하면, 리안갤러리 개인전은 상업화랑 전시로는 2년 만이라는 점,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는 현역 작가임을 입증하는 점 등에서 상징성이 있다.

 

 

개인전을 앞둔 작가를 지난 12일 경기도 고양시 삼송테크노밸리 작업실에서 만났다. 아버지를 목사로 둔 독실한 기독교 집안 출신인 작가는 “쇄도하던 전시, 행사 참석 요청을 잘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이다. 하나님이 병을 줘서 강제로 쉬게 한 것 같다”며 감사한 표정을 지었다.


 

신작 ‘바디스케이프 76-3-2024’, 2024, 캔버스에 아클릴릭, 73×91㎝. 리안갤러리 제공


전시에는 ‘신체 드로잉(바디스케이프)’ 연작 중 캔버스 뒤에서 선을 그리는 ‘바디스케이프 76-1’, 캔버스를 등 뒤에 두고 팔을 휘두름으로써 인체 모양이 되는 ‘바디스케이프 76-2’ 등을 중심으로 미공개작이 대거 나온다. 또 캔버스를 옆에 두고 한 팔씩 휘두름으로써 하트 모양이 되는 ‘바디스케이프 76-3’을 변형한 작품들이 신작으로 나온다.
 


기존의 하트 연작은 단일한 하트로 구성돼 있다. 변형 하트 연작은 이와 달리 크고 작은 하트가 여러 개 포개져 있다. 그래서 ‘겹하트’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단일한 하트가 힘이 넘치면서도 좌우 대칭에 따른 건장한 균형미가 있다면, 변형 하트는 하트가 여러 개 겹쳐 있으면서도 비대칭이라 자유분방하고 리드미컬한 느낌이 강하다. 전시장으로 옮겨지기 전이라 마침 작업실에서 볼 수 있었던 변형 하트 연작은 형태도 색감도 풍부했다.

 


겹하트가 탄생한 배경을 물었다. 하트 연작은 사실 하트를 의도하고 그린 게 아니다. 작가는 캔버스를 정면에서 보면서 그리지 않는 특유의 제작 방식으로 한국 미술사에 이름을 남겼다. 하트 역시 캔버스를 옆구리에 세우고 팔을 휘두르고, 또 반대편으로 서서 다른 팔을 휘둘렀을 뿐인데, 그 결과물이 하트처럼 보인다며 붙여진 별칭이다. 무척 힘든 작업인데도 작가는 팔길이를 달리해 크고 작은 하트가 겹쳐지는 겹하트를 그린 것이다.
 


“신체의 움직임을 넘어 하트가 갖고 있는 소통의 기호로서의 의미와 상징성을 강화하고 싶었습니다.”
 


2년 전 갤러리현대 개인전에서 시험 삼아 선보였는데, 그때 관람객들의 뜨거운 반응을 보며 작가는 하트 자체가 갖는 상징성에 새삼 주목했던 것이다.
 


작가는 건강이 회복되자 대작에 대한 의욕을 감추지 않았다. 과거 300호 작업도 했는데 이제 그 이상도 하고 싶다며 “신체의 족적을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작품의 크기 자체가 작가의 작업 환경이 되는 그런 작업을 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건강을 잃고 건강의 소중함도 깨달았지만 새로운 작업 스타일도 선물처럼 주어졌다. 작가는 손의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 공원이든 카페든 외출할 때면 스케치북과 마커 펜, 수채화 물감, 크레용 등을 들고 다닌다. 사람이든 풍경이든 스케치를 하고 그린다. 개념미술을 한국화한 실험미술 작업을 하며 수십 년간 등 돌렸던 구상 회화의 세계에 다시 발을 딛게 된 것이다. 또 매일매일 쌓이는 상품 포장지 등에 쓰고 남은 아크릴 물감을 사용해 신체 드로잉을 하는 작업도 활발히 한다. 종이도 물감도 쓰레기통에 들어가야 할 운명이었지만 그가 살려내듯 재활용하는 것이니 기후 위기 시대에 적합한 제작 방식인 셈이다. 12월에는 이런 작품들만 모아 서울 삼청동 두가헌에서 전시를 열 예정이다.
 


손영옥 미술전문기자 yosohn@kmib.co.kr

 


[출처] - 국민일보 [And 문화] 이건용 작가 건강 회복 후 첫 개인전… 노장은 건재하다-국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