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ister and Me, 2011, Acrylic, Charcoal and sand on wood, 152.4 x 121.9 cm, Photograph by Dan Kvitka, courtesy The Pace Gallery © 2011 Jim Dine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SACK, Seoul
- New other heart on a Rock, 2009, Painted bronze, 95.9 x 51.4 x 48.3 cm, Edition of 8 + 4 AP, Photography courtesy The Pace Gallery © 2011 Jim Dine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SACK, Seoul
- Sand, Sweat and Kimchi, 2011, Acrylic, Charcoal and sand on linen, 183.2 x 152.7 cm, Photograph by Dan Kvitka, courtesy The Pace Gallery © 2011 Jim Dine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SACK, Seoul
- You & Me, Blue, 2011, Acrylic, Charcoal and sand on canvas, 182.9 x 152.4 cm, Photograph by Dan Kvitka, courtesy The Pace Gallery © 2011 Jim Dine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SACK, Seoul
- Jealous Ears, 2011, Acrylic, Charcoal and sand on linen, 152.7 x 122.2 cm, Photograph by Dan Kvitka, courtesy The Pace Gallery © 2011 Jim Dine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SACK,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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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광찬란 : 짐 다인의 노래하는 작품들
짐 다인의 《노래하는 작품 Work That Sings》은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이루어지는 그의 개인전이다. 1992년 10월 국제화랑 전시를 통해서 처음 소개된 지 근 20여년 만에 그는 과거와는 많이 달라진 작업들을 가지고 한국의 관객을 다시 찾은 것이다. 근자 우리나라에서도 해외작가들의 전시가 빈번히 이루어지고 있지만 한 작가가 시차를 두고 작업의 변화한 모습을 현재진행형으로 보여주는 일은 아주 드물다. 해서 익숙한 그의 하트가 여전히 건재하면서도 색다르게 변신한 것을 직접 확인하는 것은 아주 즐거운 일에 속한다. 그것은 칠순을 훌쩍 넘긴 작가의 지치지 않는 오딧세이를 목격하는 일이자 시류에 영합하거나 확립된 테마를 반복하는 일부 안이한 작업 풍토를 거부하는 용기 있는 선택의 소산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그의 작업들이 부정(否定)과 도전을 통한 뿌리 찾기의 과정이자 회화의 전통을 향한 끈질긴 대화의 시도라는 사실 역시 우리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부족함이 없다.
다인은 미술사의 연대기적 분류상 해프닝으로 데뷔한 팝 아티스트로 알려져 있다. 아직 미술가로 채 성숙하기도 전인 20대 초반에 당대미술의 현장에 참여하여 이름을 얻고 또 이어서 대두된 팝 아트의 일원으로 작업이 알려지면서 당시로서는 놀랄만한 빠른 '출세'를 했지만 그는 이 때 이른 성공의 짐을 벗어던지는데 10여년의 세월을 바친 '반골(反骨)'이다. 그것은 다인이 자신의 입지를 확립해준 팝 아티스트라는 지칭을 부인하고 스스로 작업의 진정한 출발을 70년대 중반으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비슷한 시기에 전설적인 성공을 거둔 화가 재스퍼 죤즈(Jasper Johns)가 '잘못된 출발 False Start'이라는 그림으로 당시 상황을 반성했던 사실을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다인의 과거부정은 물론 죤즈의 그것과는 다른 보다 심각한 정체성의 문제였다. 그는 아직도 자신을 따라다니는 팝 아티스트라는 호칭을 일종의 반동의 디딤돌로 삼고 70년대 이후에 수작업이 주가 되는 라이프 드로잉과 프린팅 작업 등을 통해서 전통으로의 회귀를 모색하는 동시에 익숙하게 다루던 일상물에 표현과 상징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내면을 탐구해왔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 등장한 것이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모티프들이며 이번 전시에 소개된 하트와 가운 등은 변화를 담아내는 신축성 좋은 용기(容器)의 역할을 해 온 것이다.
1935년 미국 오하이오주 신시내티 태생인 다인은 1957년 오하이오 대학에서 미술전공으로 학위를 받은 뒤 1959년 뉴욕으로 이주했다. 당시 뉴욕의 가장 첨단적인 미술은 앨런 카프로가 주도한 해프닝으로 이는 죤 케이지의 선(禪)철학과 잭슨 폴록(Jackson Pollock)의 액션 페인팅의 '액션'의 유산을 결합해서 만든 전혀 새로운 형태의 미술이었다. 다인은 해프닝에 동참하면서 두각을 나타냈는데 삶의 우연과 무질서까지 포괄하는 예술을 주창한 케이지에 동조하기 보다는 평생 추수(追隨)한 추상표현주의의 표현주의적인 특성과 액션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였다. 이런 배경에서 30초짜리 해프닝 [웃는 일꾼 The Smiling Workman](1960)은 그의 미래를 보여준 상징적인 작업에 속한다. 이것은 광대 분장을 한 다인이 붉은 작업복을 걸치고 "나는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좋아한다"라고 흰 종이에 페인트로 쓴 뒤 재빨리 유색 액체를 들여 마신 뒤 여분을 머리부터 온몸에 끼얹고 '캔버스'에 몸을 던져 문자 그대로 그림 안으로 들어가는 연속되는 행위들로 이루어졌는데 이런 격정과 표현은 그의 작업의 전반적인 특성으로 주관이나 감정이 배제된 부조리한 짧은 행위들로 구성된 플럭서스 '이벤트'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기 때문이다.
짧았던 해프닝의 열기가 식고 팝 아트가 대두하면서 다인은 일상적인 물건들 즉 각종 공구, 붓, 넥타이, 팔레트 등을 그리거나 화면에 부착하는 작업으로 팝 작가의 대열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그가 팝 아트에 속한 것은 모두에게 익숙한 일상품들을 다루었기 때문인데 다인에게는 그것들이 자전적인 의미로 충만한 개인적인 물건들이었던 반면 예를 들어 워홀이나 리히텐슈타인의 상품이나 물건들은 감정적인 투사 없이 사용된 근본적인 차이가 있었다. 다인의 다양한 공구에 대한 애정은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운영했고 또 자신이 청소년기를 보냈던 철물점에 대한 기억에서 비롯되었고, 작업의 재료에 대한 관심과 그를 다루는 테크닉이나 손맛을 중시하는 장인정신에 대한 존중과 집착 역시 그에게는 아주 본질적인 것이었다. 자신의 모든 작업을 자전적인 것으로 규정하는 그에게 이들은 첫 자화상이자 삶의 아이콘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결국 그는 팝 작가로 남기에는 지나치게 감정적이고 정열적이었으며, 일상품의 기용으로 드러났던 다다적인 면모는 그의 '진정한' 테마로 대치될 운명이었던 것이다. 그는 뒤샹이나 케이지 보다는 유럽의 낭만주의 회화나 뭉크를 존경하며 유럽의 회화나 추상표현주의의 후예가 되기를 선택한 것이다.
다작으로 유명한 다인은 1960년의 개인전 이후로 전 세계를 누비며 근 300여회에 달하는 개인전을 했다. 그는 회화, 조각, 드로잉, 판화, 사진, 설치 등 거의 모든 매체를 아우르며 시작(詩作)까지 하는 다재다능한 작가이다. 또 어떤 모티프를 얻게 되면 대부분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일군의 익숙한 모티프들이 존재하는데 이들과 끊임없이 대화하면서 변화해가는 과정이 그의 작업의 내용이 된다. 해서 1984년의 한 회고전은 그의 주요 모티프 다섯 개를 다루었는데 여기에는 유명한 하트와 가운 외에 비너스, 문(門), 나무 등이 포함되었다. 당연히 이들의 형태나 의미는 고정되기 보다는 시간과 상황에 따라 변화해왔으며 하트나 가운 역시 예외가 아니다.
우선 1964년에 처음 등장한 가운은 『뉴욕 타임즈』의 사진광고 이미지로부터 채택된 것인데 다인은 옷 안에 있는 인물을 지우고 그것을 일종의 자신의 대리인처럼 사용했다. 가운은 시간이 가면서 평면적인 것에서 입체감이 있는 것으로 변화해갔고 1976년에 이르러서 그는 가운은 더 이상 자화상이 아닌 그냥 이미지일 뿐이라고 말해서 달라진 시각을 보여주었다. 1980년대에 이르러 회화가 부활하고 표현주의적인 화법이 성행하자 가운 역시 활달하고 컬러풀한 것으로 변신을 거쳤고 당대에 이르러서는 화려한 붓 자국들의 구성을 지지하는 프레임 같은 것으로 역할이 변했다.
이번 전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발렌타인 하트는 1966년 다인이 디자인한 무대장치의 일부로 처음 만들어졌고 70년대에 주요 모티프로 확립되었다. 하트는 가운보다 더 대중적인 이미지이자 감정을 전달할 수 있는 매체이며 실제 인체의 한 부분으로서 풍만한 여성의 몸을 대변한다. 다인은 하트 형태의 에로틱함을 인정하면서 자신은 어릴 때 발렌타인데이 하트의 붉은 색을 좋아했는데 이 갈라지고도 가득 찬 오브제는 여성 성기이자 궁둥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하트 역시 많은 변화를 거쳤지만 70년대 초에 등장한 후 10년 뒤에야 본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그때부터는 모든 매체를 통해 끊임없이 재창조되고 있다. 그는 하트를 지속하는 이유에 대해서 무언가를 내 것으로 만들면 그걸 절대 버리거나 낭비하고 싶지 않다며 자신은 로맨틱 화가이자 맥시멀리스트, 즉 표현주의자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피노키오는 1997년에 등장한 그의 가장 자전적이고 지속적인 모티프이다. 그는 어린 시절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영화를 본 순간 이후 이 이미지가 자신을 떠나지 않았다며 그에 대한 애착을 표현했는데 실제 작업의 출전은 디즈니 영화가 아니라 19세기 후반의 소설 『피노키오의 모험: 꼭두각시의 이야기』이다. 소설 속의 피노키오의 모험과 고난, 그리고 인간으로의 재탄생 같은 내용들이 엄청난 상상력의 보고가 되었고, 그는 반항적인 피노키오에 애착을 느끼며 그를 일종의 자화상으로 생각했다. 중요한 점은 꼭두각시 인형을 빚어서 생명을 불어넣는 피노키오의 제작과정은 창조과정의 메타포이자 비천한 자료를 황금으로 전환하는 연금술이기에 자신의 작업과 동일시가 된 사실이다. 피노키오는 크기와 형태가 다양하며 양팔을 들어 올리거나 환호를 하거나 하는 여러 제스쳐가 있는데 전시된 작업은 걷고 있는 작은 피노키오로 작업용 장갑을 끼고 지저분한 셔츠와 붉은 멜빵바지를 입은 소년으로 모험과 고난 중인 모습이다.
제목 《노래하는 작품》이 암시하듯 다인은 이번 전시에 대해 자신은 뮤즈의 목소리를 늘 듣고 있으며 작업을 음악처럼 느끼고 멜로디를 그린 다음 색채와 붓질로 하모니를 전개한다고 설명했다. 예술작업의 영감을 주는 '뮤즈'라는 단어는 당대미술에서는 사어(死語)에 속하고 미술을 음악과 동일시하는 것도 추상미술의 기원과 연관되어 사용된 오래된 개념이다. 이로써 그가 현대미술의 유행적 경향을 거부하고 장인정신과 예술적 영감의 전통을 택한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데 이는 혹자가 지적하듯 가장 현대적인 것에 대한 방어이자 이들로부터 자신을 보존하기 위한 선택일 것이다.
다인에게는 파리, 뉴욕, 독일 등 세계 여러 곳에 스튜디오가 있지만 일 년의 반은 미국 워싱턴의 왈라왈라 Walla Walla 라는 소도시에서 지내며 전시작들은 대부분 그 곳에서 제작되었다. 이번 전시의 영감은 오랜 부재 뒤에 화실에 돌아와서 재발견하게 된 자신의 팔레트였다. 마치 칸딘스키가 거꾸로 놓인 자신의 작업을 보고 추상미술의 가능성에 눈뜬 것처럼 그는 팔레트를 그릴 수 있으며 그 역시 다른 주제만큼 심오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즉 팔레트를 25개로 쪼개서 확대하면 그림이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과 형태가 제시할 수 있는 연상이 무엇인지를 보여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팔레트는 물론 그의 초창기 모티프 중의 하나이지만 당시에는 그것이 화업(畵業)을 가르키는 것이었다면 현재의 팔레트는 큰 플렉시 글라스로 된 것인데 그는 이를 거꾸로 놓고 물감이 혼합된 흔적에서 추상적 모티프를 발견한 것이다.
현대미술에서 '파운드 오브제'란 주변에 있는 일상물을 발견해서 차용하거나 다른 작가의 기존 모티프 등을 가져다 쓰는 것을 뜻하는데 이처럼 추상적인 붓질로만 이루어진 모티프를 채택, 활용하는 것은 아주 독특한 선택이다. 물론 주변의 기하학적인 패턴을 파운드 오브제처럼 활용하는 것은 재스퍼 죤즈가 일찍이 시도한 일이고 또 액션 페인팅의 붓질을 패러디하기 위해 인용한 작업들도 있지만 이처럼 물감을 혼합한 흔적을 화면 구성의 동인(動因)이자 모티프로 삼은 예는 그가 처음일 것이다. 결과적으로 하트나 가운 등 익숙한 구상적인 테마는 있지만 추상 모티프가 전면으로 부상하며, 불분명한 색채의 덩어리들이 서로 부대끼며 공존하는 열린 화면을 제작한 것은 그가 스스로를 그간 반대해 온 추상의 역사에 편입시킨 것으로 그 의미가 가볍지 않다.
전시된 하트나 가운은 모두 아크릴과 목탄, 그리고 모래를 재료로 나무 위에 그려진 것들이고 유일한 예외로 3년 전에 제작된 오일과 캔버스를 재료로 한 하트가 있다. 이 유화 작업은 하트가 중첩되고 붓질이 짧고 반복적이어서 장식적인 올오버 화면을 구성하는데 초창기의 컬러 차트에서 진화한 듯한 [Mexican Night Salad](73)의 후예로 보인다. 나머지 대다수의 하트는 [푸른 이끼 낀 마노 Moss-Green Agate], [벌에 물림 Bee Bite], [모호크 인디언 Mohawk] 등 주변 자연환경을 제목으로 삼았고 그중에는 [샌드 스웨트와 김치 Sand, Sweat and Kimchi] 같은 '한국적' 제목도 있다. 그는 이들의 제작과정을 제소와 모래로 바탕을 한 나무 위에 목탄으로 하트를 그린 다음 빨리 마르고 수정이 용이한 아크릴로 작업하고 그걸 갈아낸다고 설명했는데 이 과정에 그라인더가 갈아내는 수정작업을 하고 또 공기 압축기가 그려진 화면 위에 물감을 펼쳐 바르는 작업을 해서 작업이 프로세스적으로 중첩되며 레이어를 쌓아간 것이다. 결과적으로 공명으로 진동하는 에너지를 발산하는 화면은 짙고 풍부한 물감 반점들의 화려하고도 강렬한 오케스트라 무대가 되었다.
이들은 시리얼 이미지이지만 모두 서로 다르고 하트나 가운은 뚜렷한 초점이 없는 화면의 방향성이나 틀을 잡아주는 지지대의 역할을 한다. 하트의 풍요한 곡선이나 급히 흘러내린 직선과 조응하는 추상 모티프들은 자연의 어떤 대상도 묘사하지 않는 순수한 음악의 노트처럼 그가 존경하는 샘 프랜시스(Sam Francis) 의 화면에 맥락한다. 그러나 다인의 작업은 프랜시스의 작업과는 달리 화면에 빈 공간이 없고 붓질은 보다 중첩되고 무작위적으로 흩어진 느낌이다. 다인은 이 화려한 페인트의 향연에 대해 워싱턴에 살면서 그 따가운 햇살과 풍광에 영향 받지 않기 어려우며 이런 환경 때문에 모든 것을 가열해야 작품이 빛에 의해 쓸려나가지 않는다고 설명한바 있다.
채색한 브론즈로 된 바위 위의 한 쌍의 하트는 붉은 색이 강조되고 여성의 신체를 노골적으로 연상시키는 에로틱 하트이다. 다인은 일찍이 "쿨한 시대의 뜨거운 작가"라는 평을 들었거니와 그의 격정적인 미술은 날로 비인간화하고 획일화하는 현대사회의 모습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그는 추상표현주의 시대에 미술가로 성장했고 한 번도 그 교훈을 잊은 적이 없는 작가이다. 그들의 온몸을 던진 회화에의 몰입과 자기고백이 이미 낡은 패러다임으로 변한 지금 그는 새삼스럽게 회화의 전통에 천착하며 그로부터 자신의 위치를 정립하고자 한다. 그의 그림들은 햇볕 가득한 양광찬란(陽光燦爛)한 마음의 풍경이자 그 음악이다. 궁극적으로 다인에게 화업은 필생이고 회화는 지복(至福)인듯하다. 해서 그의 추상은 반드시 구상의 반대이기 보다는 그 구분을 뛰어넘는 어떤 천상의 상태를 지향하는 것이 아닐까.강태희(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