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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oup Show HERE & MORE : 단색화 넘어, 너머로 Nov 02 , 2023 – Jan 13 , 2024 | Daegu

HERE & MORE; 단색화 넘어, 너머로

-지금 한국 동시대 미술을 바라보는 바로크적 시각

글. 정준모

 

지금 한국의 동시대 미술(Contemporary Art)은 어디쯤 와있을까. 늘 묻고 답을 해보려 하지만 ‘지금’, ‘여기’을 전제로 미래를 말한다는 것, 그것도 동시대 미술의 향방을 이야기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번 전시 는 그 어려운 질문에 대한 답이라기 보다는 답에 다가가려는 하나의 시도다. 지금껏 일관되게 40년 가까이 자신의 작업을 영위해 오면서 이제 중견의 대열에 들어선 김근태(1953~ ), 김춘수(1957~ ), 김택상(1958~ ), 남춘모(1961~ ), 이 진우(1959~ )등 5인은 한국 동시대 미술과 자신의 작업에 대한 좌표를 이번 전시를 통해 스스로에게 묻는다.

한국현대미술(Modern Art)의 한 경향으로 현대 미술의 이념과는 동 떨어 “집단개성”이란 용어를 써서 설명해야 할 만큼 “대세”를 이루었던 단색조 풍의 회화가 70년대~90년대 초를 주도한 이후 2010년 새롭게 이들의 회화가 “단색화”란 이름으로 다시 주목을 받고, 특히 한국만의 독특한 현상으로 미술시장의 주류이자 블루 칩으로 등장하면서 한국미술계는 “단색화” 열풍 속에서 호황을 구가하는 듯 했다. 이런 상황은 많은 작가를 “단색(One Color)화”의 길로 들어서도록 부추겼다.

이런 이상 현상을 두고 자연스럽게 그간 치열하게 자기 작업을 통해 한국 미술의 미래 역사와 전통을 세우는 동시에 동시대를 반영한 깊이 있는 작업을 중시해 온 5인의 작가들의 토론으로 이어졌다. 허명 의식과 미술시장에 매몰된 한국미술의 현 상황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통해 우리 미술이 서 있는 지금, 여기의 명확한 좌표를 읽어냄으로써 이를 넘어, 너머로 가보고자 하는 데 뜻을 같이해 이루어진 전시다.

따라서 전시는 이름은 얻었지만, 여전히 모호한 “단색화”의 개념과 범주 그리고 동시대 미술과의 관계 맺음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의 연장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들의 공통된 특징은 소위 외견상 단색조 회화와 유사하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들은 “단색화”의 철 지난 교조적 양식과 이념과는 거리를 두고 있다.

70년대 한국미술의 하나의 현상을 지칭하는 “단색화”라는 용어가 한국미술 전체를 지칭하는 것처럼 오역된 “단색화”란 용어가 한국미술의 외연 확장을 저해하는 스스로 만든 하나의 프레임 속에 들어가 갇혀버린 형국이라는 입장이다. 이런 입장의 배경에는 70년대 “단색화”의 형식과 미학적 실천을 같이했던 작가들 외에 새로운 작가들까지 “단색화”의 대열에 뛰어들면서 과도하게 영역을 과확장시킨 것이나 “조소”와 “입체”를 포함한 “단색조 미술”이 아닌 “단색화”, 즉 ‘회화’에 한정시켜 버린 것 때문이다.

따라서 는 이런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저 너머의 세계로 가보고자 하는 몸짓이면서 역사 또는 현상으로서의 “단색화”에 대한 반성적 승계와 함께 1970년대와 너무나 달라진 초연결사회로 하나가 되어 실시간으로 이어지는 지구촌의 동시대를 관통하는 “오늘”이란 화두를 어떻게 한국 미술의 “바탕”에 융복합 할 것인가. 그리고 우리 안의 스스로 만든 틀을 깨고 나와 세계와 소통할 것인가에 대한 사색의 결과이기도 하다.

“단색화”는 70년대 한국미술의 큰 흐름이었다. 이런 현상이 집단적으로 나타날 수 있었던 것은 “새로운 것” 즉 추상미술을 곧 “현대미술”이라고 여겼던 당시 20세기 모더니즘의 강령을 오독한 결과이자, 대세에 순응하는 자기 확신이 없는 태도 그리고 “부분”을 “전체”로 왜곡한 결과이기도 하다. 또한 한국의 유교적 전통과 농경문화의 기반한 삶 그리고 이해를 바탕으로 해석된 내용이 없는 형식을 수용한 이입된 모더니즘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기도 하다.

우리에게 전통이란 시간을 의식할 수 없을 만큼 시간을 두고 켜켜이 쌓여 형성된 유산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어제 오늘이 조금씩 쌓여 내일의 전통을 만든다는 점에서 다소 엉성하고 부족한 70년대 한국미술의 이러한 사정도 한국 미술사의 일부인 동시에 부인할 수 없는 전통이다. 전통의 승계란 이렇게 부족하지만 이를 이해하고 인정해서 현상으로 수용한다는 의미다. 그리고 이를 수용하면서 현재 지금 이곳의 나 또는 우리는 어떻게 미래의 전통을 만들어 갈 것인가에 대한 태도를 포함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전시를 통해 가장 깊이 고민했던 부분은 “단색화”란 미술 현상을 하나의 현상으로 시효가 지난 전통의 일부로 볼 것인가 아니면 지속되는 한국문화의 흐름으로 이해할 것인가였다. 그리고 성급한 결론일지 모르지만, 한국 현대사에서 분명하게 존재 했던 하나의 사건, 즉 70년대 한국현대미술사에 등장한 운동 또는 경향으로 정리하기로 했다. 즉 오랜 전통이 아니라 근현사에 형성된 하나의 전통으로 이외의 많은 전통과 유산을 부정하거나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이면서 오늘 우리의 자각, 예술가로서의 역할을 더해 미래의 전통을 만드는 일에 충실히 임하기로 했다.

“단색화”는 1970년대 당시 한국현대미술의 이론적 틀 거리를 제공했던 이일(1932~97)에 의해 논리적인 기반을 마련했다. 그는 60년대 후반 아방가르드 운동을 주도했던 지금은 세상을 떠났거나 80대 원로가 된 청년 미술가들과 함께 전위의 선봉에서 그들의 작업을 ‘환원’과 ‘확산’이란 단어로 정리했다. 50년대 말과 60년대 초 한국미술은 격정적인 앵포르멜(informel)이란 이름의 추상표현주의 경향을 거쳐 이미 기하학적인 평면 회화가 주를 이루었던 실로 압축적인 변화를 보였던 10년 이었다. 당시는 오늘날의 설치미술과 유사한 ‘입체’가 대세를 이루었다. 이일은 이런 입체를 ‘확산’으로, 평면회화를 ‘환원’으로 규정했다.

이후 당시 폭발적으로 확산하던 입체는 1973년을 계기로 갑작스럽게 평면으로 회귀하면서 대세로 자리잡았고, 당시 사회적인 관심사로 등장한 한국성, 민족적인 것과 맞물리면서 한국적인 것을 작품에 반영하려 했다. 이때 등장한 것이 소위 “백색주의”, “백색화”다. 백색화는 백의 민족이라는 한국적 전통에 기반을 둔 것이라는 생각에서 많은 작가들이 흰색 또는 백색에 관심을 갖고 이를 다뤘다. 단색화를 논할 때 대개 1975년 일본 동경화랑에서 열렸던 <한국 5인의 작가-다섯 가지의 흰색> 전은 단색화의 전이 “단색화”의 시원처럼 인식되고 있지만 실은 당시 한국미술의 저변을 이루는 젊은 작가들의 관심을 전통을 단은 현대미술의 하나로 “흰색”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모더니즘, 현대미술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가지지 못했던 당시, 일본 유수의 화랑과 비평가의 눈에 의해 “발견”되면서 힘을 받아 확산되었다. 이후 다향한 형식과 내용의 단색 풍의 평면회화가 평면성을 내세우면서 나타났고 이런 현상은 ‘한국적 환원주의’ 또는 오늘날 단색화란 용어의 원전인 ‘모노크롬 회화’라는 말로 정리되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후 영국 테이트 리버플에서 열린 <자연과 함께>(Working With Nature: Traditional Thought in Contemporary Art from Korea, 1992. 4. 8~ 6. 21)전은 단색 풍의 한국현대미술을 ‘물성과 정신성이 하나가 된 생성적 공간’(Materiality and spirituality uniting on a structured surface)으로 해석하며 ‘범자연주의’라고 규정했다.

당시 활동하던 오광수(1938~ )는 절제된 색채에 의한 표현이란 점과 단순한 색채의 개념을 떠나 우리 고유한 정서의 문제 내지는 정신의 항상성에 귀속되고 있다는 점을 단색조회화의 특징으로 보았다. 김복영(1942~ )은 환원에 의한 사물로서의 평면으로 규정했다. ‘평면’을 “사물 그 자체”로 환원한다는 것은 미니멀리즘 이후의 인식, 즉 캔버스가 오브제가 되어버린 시점의 인식을 의미한다. 서성록(1957~ )은 70년대 모노크롬 회화는 국제적인 미니멀리즘의 유행과 동양의 정신세계를 구현하는 ‘흰색’을 특징으로 삼았다. 이런 현장 비평가들의 논지는 이후 미술사학자 윤난지의 <형태방법과 그 의미>(1992)란 논문에서 “단색화”를 반복적 신체 행위와 물성의 관계에서 탄생한 작업으로 간주하며, 이를 무위와 같은 동양적 자연관에 근거한 것이란 입장으로 정리되었다. 그리고 2000년 전후로 백자의 아름다움에서 비롯된 ‘백색 미학’을 해체하려는 탈식민주적 움직임이 나타났고, 이후 단색화 미학은 강태희, 정영목, 김영나, 김미경, 김수현, 김이순, 윤난지 등의 연구자에 의해 노장사상의 무위론을 중심으로 설명되었다.

하지만 단색화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전시도 이런 “단색화”란 현상을 규명하고 이를 넘어서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일단 “단색화”에 반영된 한국적 전통을 형성하는 많은 요소중 하나로 인식하면서 미래의 전통을 세워나가려는 실천의 일환이다.

“단색화”가 “단색화”란 이름을 얻는 규정된 순간, 이미 전통이자, 역사가 되었다. 이는 더 이상 현재진행형의 미술, 동시대 미술이 아니라는 뜻이다. 다만 전통을 형성하는 “사회나 집단에서 세대를 거치며 이어받은 생활 형태의 총체”의 일부로 “이미 존재하는 삶의 양식과 상징체계”로 그 미학적 가치와 실천적 의지는 이어지겠지만 아쉬운 것은 “단색화”라는 단어는 존재하는데 그 실체가 여전히 모호하다는 점이다. 깊이 있는 연구 없이 조금 성급하게 “한국미술의 세계화”를 위해 역사화 한 것은 아닐까 하는 후회가 드는 것은 이런 때문이다. 특히 단색화란 용어의 근거가 “모노크롬 페인팅(Monochrome Painting)”의 번역어와 동일하다는 점은 내내 아쉬운 대목이다. 번역된 단어는 그 원전의 하위개념이라는 점 때문에 한국의 독자적인 창의적이란 의미가 퇴색되기 때문이다.

전시를 준비하면서 오늘날의 미술을 포함한 문화 전반을 폭 넓게 다시 읽고 보는 논거의 틀이 되어준 질 들뢰즈(Jilles Deleuze, 1925~1995)의 바로크 미술을 읽어낸 탁월한 혜안을 떠 올렸다. 들뢰즈는 바로크 예술의 주요 특징 중 하나인 ‘주름’ 개념을 중심으로 그의 철학을 구성했다. 그는 모나드(Monad)의 내부와 그 상관물인 파사드(Façade)의 외부를 주름이 가로지르는 것을 형상화하면서, 주름과 바로크의 예술 양식을 연관 짓고자 했다. 주름은 존재와 비존재,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표면과 깊이 사이를 연결하는 역할을 하며 형상과 배경, 내부와 외부, 대지와 건물이라는 전통적인 이분법을 거부하고 이들을 하나의 주름 잡힌 표면으로 통합해 세계를 새롭게 인식하는 방향을 제시하고 개념으로 통합한다. 또한, 들뢰즈는 추상형식의 그림이 아니라, 선들과 색들의 카오스적 구조와 흐름에서 모든 형식을 해체함으로써, 재현을 넘어서 형식을 해체하는 추상적인 미술로 접어든다.

문화 간 성찰과 변혁적 창조를 통해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오세아니아의 현대미술에서 현대 미학은 주로 초 문화적 성찰과 변혁적 창작에 비롯된다. 이는 세계적인 예술 운동으로 들뢰즈의 바로크에 대한 이해에 기초한 주장이다. 또한 아시아 등 제 3세계 미술은 동서양 문화 의 이입과 투영의 결과로 역사성과 현대성이 통합되고 동화된다고 보았다. 이는 바로크 시대의 동서양을 망라하는 다양한 문화적 영향이 혼합된 것과 유사하다. 따라서 소위 신 바로크 양식은 17세기 바로크 양식과 유사한 방식으로 시각과 소리, 텍스트를 결합하면서 첨단 기술을 사용해 새로운 관점을 표현하는 동시대 미술의 근거가 되었다.

이후 들뢰즈의 이론은 제3 세계 국가들의 서구 미술사의 맥락 속의 여전히 성에 차지 않는 자기 미술에 대한 자부심과 신념과 만나 자국의 문화적 정체성을 세계인들에게 설명하는 근거가 되었다. 2010년대 새롭게 부상한 한국의 단색화 열풍도 실은 이런 문화적 맥락과 열망 그리고 미술 경제의 측면과 무관하다고는 할 수는 없다. 다만 그들은 자국의 언어로 자신의 문화와 미술을 명명하고 설명하면서 더 이상 종속적인 관계가 아닌 대등한 관계를 형성한다. 브라질의 식인주의(Cannibalism)와 아프리카의 ‘흑인인 상태’, ‘흑인 세계의 문화적 가치’를 지칭하는 네그리튀드(Négritude) 운동, 호주 멜버른에서 시작된 사우스 프로젝트(South Project)에서 비롯된 ‘남쪽 이론(South Theories)’등이 그것이다.

우리도 과감하게 타자의 눈에 비친 나의 모습을 버리고 자기 눈으로 자신을 보고, 우리의 말과 글로 우리 미술을 설명하는 노력이 더욱 필요하다. 따라서 세계가 하나로 묶이고 좁아진 지금 서구를 따라잡는 것도 아니고 다른 나라를 앞지르려는 것도 아닌 서로 동등하게 자신의 말로 자기를 표현하는 우리의 미학을 현대미술을 넘어 동시대 미술로 실천하고 구현하고자 한다. 70년대 자연주의적 단색조 회화, 한국적 환원주의는 이미 지나간 이일이 당시 명명했던 ‘70년대 작가들’의 20세기식 현대(Modern) 미술이다.

전시에 참여하는 김근태, 김춘수, 김택상, 남춘모, 이진우 등 한국의 동시대 미술가들에게 나타나는 단색풍의 “그림”은 지금 여기에서 제작된 동시대(Contemporary) 그림으로 이루어지는 미술이다. 이들은 70년대 작가들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전통을 해석하고 수용하면서 보다 열린 새로운 양식의 회화를 구현한다. 이런 별개의 스타일을 지닌 동시대 미술이 네오 바로크 양식의 웅장함과 극적인 표현과 결합 해 “접히고 펼쳐지면서” 스스로를 드러낼 흥미로운 융합이 기대된다. 특히 이들 5인의 작품에서 나타 난 동시대 회화의 울림과 떨림이 있는 그림이 지닌 단순함과 철학적 깊이와 네오 바로크의 화려하고 역동적인 요소가 배합되어 독특하고 혁신적인 형태의 예술로 나타나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이들을 하나의 틀에 가두기보다는 열어주어 자유롭게 사유하고 행동하면서 20세기의 단색조 회화를 넘어 그 너머의 새로운 바로크적 공명이 있는 한국의 동시대미술의 세계로 우리를 데려가 줄 것을 기다린다.

 

 

HERE & MORE: Dansaekhwa and beyond

Art “Today” Interpreted from a Baroque Perspective

 

Chung Joonmo / Curator, Former Chief Curator at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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