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면 4, 2019, Laser print, Formaxbord, 51 x 79 cm
- 도면 5, 2019, Laser print, Formaxbord, 51 x 79 cm
- 도면 8, 2019, Laser print, Formaxbord, 51 x 79 cm
- Surface 2, 2019, paper cut, glass with wood frame, 72.7 x 111 cm
- Surface 7, 2019, paper cut, glass with wood frame, 51.3 x 71.8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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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범 작가는 2008년부터 미디어가 이미지를 생산하고 전달하는 방식과 그것을 받아들이는 수용자의 태도에 대해 비판적 질문을 던지는 작업을 진행해왔다. 나는 2010년 본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질문하고자 했던 전시 《눈먼 자들의 도시》를 준비하며 작가를 조사하는 중에 하태범 작가의 ‘white’ 시리즈 중 하나인 <이태리 불교사원 화재 (2009)>의 이미지를 컴퓨터 모니터로 처음 접했다. 그의 작품은 재현의 대상이 타인의 불행과 고통을 담고있는 보도사진이라는 사실을 떠올리기 어려울 정도로 말끔하고 아름다웠다. 색깔이 모두 지워진 폐허의 공간은 정지와 침묵의 의미를 극대화하며 평온한 느낌마저준다.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장소처럼 보이는 백색 풍경의 낯섦과 사진 속 사물들의 구체성이 부딪히며 생기는 기묘한 분위기의 이미지는 잊을 수 없는 환영으로 남았다.
‘white’시리즈는 미디어에 실린 재난의 현장, 폐허의 사진 이미지를 수집하고, 사건 현장의 이미지를 흰색 조각 모형으로 재현한 뒤, 그 모형을 다시 미디어에서 보여준 구도대로 촬영한 것이다. 기억할 것은 그의 작품이 ‘사건’의 재현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엄밀히 말해 사건이 아니라 사건 ‘이미지’의 재현이다. 그가 지적하는 것은 사건을 비추는 미디어라는 거울에 비친 이미지이다. 그는 (평면의) 미디어 이미지를 자신만의 입체 공간으로 해석하고, 그것을 다시 평면의 결과물로 보여준다. 평면 이미지를 입체로환원하는 과정, 그리고 그것을 다시 평면으로 찍어내는 과정에는 작가적 해석의 개입이 불가피하다. 결과적으로 그의 이미지는 사건의 실체와 같을 수 없다. 사건의 이미지를 작가의 시선으로 바라본 또 하나의 해석일 뿐이다. 즉, 그의 작업 과정 자체가 모든 미디어 이미지의 숙명, 각자의 프레임 안에서 대상을 볼 수밖에 없는 한계를 되풀이해 보여준다. 이것이《프로세스 (Process)》전시가 그의 작업 과정을 전면에 드러내 보여주는 이유이다.
《프로세스》전시는 작품과 함께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제작한 모형들과 작업 도면들을 보여주는데, 그 과정 자체가 미디어의 생산과 수용 과정을 보여주는 메타포로 작용한다. 재해현장을 재현한 모형은 결과로서의 사진과 함께 전시됨으로써 이미지가 담아내지 못하는 진실을 보여준다. “모형들은 촬영이 되는 면은 정밀하게 제작되고, 이면은 연극 무대 세트처럼 생략되고 허접하게 제작된다. 그 부분을 그대로 노출시켜 보여줌으로써 사건의 이면과 미디어가 생산되고 소비되는 과정을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자 한다.”(하태범) 그의 작품이 매체에 보도된 이미지라면 그가 과정에서 제작한 모형은 사건의 실체이다. 작업 모형은 이미지의 실체를 보여줌으로써 이미지가 얼마나 허상에 불과한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프로세스》전시에는 ‘illusion’, ‘surface’, ‘facade’로 이어지는 시리즈 작업들을 보여주는데, 표현의 방식에서 서로 차이가 있지만 미디어 수용에 대한 비판적 질문이라는 동일한 맥락에서 진행되고 있다. ‘white’시리즈에 이은 ‘illusion’은 제작 방식은 동일하지만 제목의 변화 에서 작가의 관점이 보다 분명히 드러난다. ‘white’시리즈가 <쓰나미 (2008)>, <독일뒤셀도르프 살인사건(2010)>, <파키스탄 테러(2010)> 와 같이 작품마다 개별의 사건명을 붙였던 것과 달리 ‘illusion’시리즈는 개별의 사건명을 밝히지 않는다. 사건 자체보다 미디어의 속성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작가의 의도를 더 확실히 전달한다. 작품명 ‘illusion’은 우리가 미디어를 통해 바라보게 되는 사건의 이미지는 실재가 아닌 미디어라는 거울에 비친 환영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환기시킨다.
‘surface’는 미디어에서 수집한 이미지를 재현한다는 사실은 같지만 재현의 방식이 더 평면적이다. 이 작업은 사진 속에 있는 구조 그대로 도면을 만들고, 그 구조 위에 흰색 종이로 만든 조각을 올려 부 조 형태로 제작한다. 결과물은 사진이 아닌 부조이지만 사진 속 공간감이 제거되면서 평면성이 더 강조된다. 작가는 이 새로운 표현 방식 의 의도에 대해 “대상의 한 단면만 보여주는 부조의 한계성을 이용하여 사건의 표면만 바라보는 (껍데기만 보는) 미디어의 소비성을 ‘surface’의 타이틀과 함께 말하고자했다.”라고 설명한다. 현대인의 일상을 지배한 미디어, 그 미디어의 이미지는 입체가 아닌 평면이다. (신문, TV 스크린, 컴퓨터의 모니터, 스마트폰의 액정 화면을 떠올려보자.) 평면 이미지는 한쪽의 면에서 볼 수밖에 없으며, 프레임의 바깥을 잘라내야만 하는 한계를 가진다. 문제는 우리가 그 한계를 자주 잊어 버리고 그 이미지를 통해 건너편의 세상을 알 수 있다고 착각한다는 사실이다. ‘surface’ 작업은 이미지의 평면성을 더욱 부각하면서 미디어 이미지의 일면성을 시각화하는 효과를 가진다. 또, ‘ surface’와 같은 맥락에서 이어지는 작업 ‘facade’는 디테일한 부분은 과감하게 생략하고 평평한 이미지 층을 쌓아 올려 그 평면성과 정면성을 더욱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