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urtesy of the artist & Leeahn Daegu © Youngha J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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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안갤러리 대구에서 준비한 이번 전시는 각기 다른 조형 언어와 표현 양식의 추상회화를 통해 독자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해 나가고 있는 강호숙 작가와 김미경 작가의 2인전<Transcendence> 로 2019년 5월 23일부터 7월 8일까지 관객들을 찾아간다.
오십 대 중반의 두 여성 작가인 강호숙과 김미경은 각각 경영학과 영문학을 전공한 후 비교적 늦은 나이에 미술을 공부하기 시작했으며 삼십 대에 이르러 미국의 프랫 인스티튜트(강호숙)와 파슨스 디자인 스쿨(김미경)에서 수학했다. 강호숙 작가는 현재도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데 반해, 김미경 작가는 미국에서의 활동을 마무리하고 국내에서의 활동의 폭을 서서히 넓히고 있다. 비슷한 예술적 이력을 가진 두 작가의 회화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주요 요소는 물질화된 빛의 표현이다. 그러나 이 빛은 물리적 차원과 현실을 ‘초월(transcendence)’하는 정신적인 영역의 빛이라고 할 수 있다. 각기 자신만의 고유한 방식으로 이러한 초월적 빛을 감각 가능한 형상으로 구현해 낸 두 작가의 추상화를 통해 그들이 세상을 대면하는 자세와 내면세계를 음미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갖고자 한다.
강호숙 작가는 캔버스의 전체를 작고 반복적인 점과 부채꼴, 원형으로 된 망을 촘촘하게 어우러지게 하여 공간감과 밀도가 살아 있는 균질적 표면을 만들어 낸다. 이 회화 공간은 흰색과 회색톤의 바탕에 때로는 노란색과 붉은색이 가미되어 폭발할 듯 분출되는 빛의 에너지로 채워진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여러 가지 강렬한 색채가 뒤섞이며 사물의 사이사이로 스며드는 순간적인 빛의 밝고 경쾌한 변주, 리드미컬한 변화를 포착해 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나뭇가지 사이사이로 일렁이는 빛의 합주, 공기 사이로 퍼져 나가는 불꽃의 움직임, 구름을 뚫고 나오는 태양의 강렬함을 묘사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녀의 회화는 이렇게 빛과 어우러진 자연의 전경을 재현한 것이라기보다는 자연 속에 내재하는 빛의 역동성과 에너지를 통해 자신이 정서적으로 교감하는 정신적 차원의 세계를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사실 빛은 구체적 형태의 물질도 아니고 재거나 만질 수도 없지만 하나의 거대한 에너지 덩어리의 총합체로서 유동하며 어디에나 존재하는 것이다. 강호숙은 산이나 사찰, 바다 등을 여행하면서 느낀 자연의 감흥을 이렇게 결코 잡을 수 없는 빛으로 형상화함으로써 구체화시킨다. 서양에서 빛은 신적 존재의 상징체로서 초월적 요소로 인식되기도 하고, 동양의 도교 사상에서의 원기론은 우주만물의 생성과 재생에 작용하는 기의 흐름, 즉 눈에 보이지 않는 에너지의 작용으로서 일종의 초월적인 빛의 작용으로 보여지기도 한다. 강호숙의 회화에는 이러한 물리적 차원을 넘어서는 범우주적 차원의 에너지가 반영되어 있다.
그녀의 회화 공간에서 이러한 빛의 알갱이 또는 기를 내뿜는 에너지는 수직으로 상승, 하강하거나 화면의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혹은 그 반대로 움직이는 듯이 보인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화면의 중심에서 사방으로 뻗어 나가며 캔버스의 틀 너머 실제 공간의 벽으로 힘의 영역을 확장하는 듯이 보이기도 한다. 또 다른 경우, 서서히 생성되는 빛들이 정면으로 영향을 미치며 우리가 서 있는 공간을 비추는 것과 같은 인상을 준다. 이렇듯 강호숙이 표현하는 빛은 동적이며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운동성을 내포하고 있다. 우리가 자연과 교감할 때, 감각적 차원을 넘어 물아일체로 합일을 이루듯이 작가의 그림 속에서 이와 유사한 몰입의 경험을 통해 초월적인 빛의 정신성을 체감하게 될 수도 있다. 대체적으로 밝고 경쾌한 색채의 사용은 동적인 운동감과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며 이러한 경험을 극대화시킨다. 즉 끊임없이 생성, 재생, 순환하는 세상의 근본 원리의 표상인 빛의 운동성을 실질적으로 감각 가능한 형과 색을 가진 물성을 통해 구체적으로 느끼고, 더 나아가 이를 체감하는 우리 자신은 물론 자연계에 포함된 모든 생명력을 가진 존재들에 대한 반성의 계기를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듯 강호숙은 자신의 삶 속에 녹아 있는 명암의 단면이 아니라 보다 더 근본적이고 정신적인 차원의 세상의 발견을 추구한다. 즉 미시적 삶의 고통을 극복하는 그녀의 밝고 긍정적인 삶에 대한 관조적 자세가 초월적 빛의 표상을 통해 일관되게 그녀의 회화를 관통하고 있다.
단순한 형태의 사각형과 삼각형을 주조로 한 미니멀한 기하학적 추상화 작업을 하고 있는 김미경 작가에게 조형적 영감의 원천이 된 것 중의 하나는 어머니의 힘겨운 삶에 대한 기억으로 뚜렷이 각인되어 있는, 그녀가 자주 사용하던 보자기이다. 작가에게 보자기는 정착하지 못하는 삶의 불안을 상징하는 것이자 평면에서 입체로 전환될 수 있는 형태의 가변성을 내포한 것이었다. 즉 접는 방식에 따라 사각에서 사각 또는 삼각의 겹이 쌓이거나 물건을 쌀 경우 완전한 입체가 되기도 한다. 캔버스에 여러 겹으로 쌓아 올린 사각형은 이러한 보자기의 조형적 특성을 반영한 것이자 순간적으로 투과되는 빛의 투명한 표면들을 포착한 것이다. 김미경은 기하학적 형태는 드러나지 않는 생각과 마음을 구현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마음의 조각이자 시간의 조각, 그리고 보다 더 본질적인 근원의 조각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녀의 회화는 그녀가 감내해 온 삶의 상처와 질곡, 환희 그리고 기쁨, 슬픔 등 타인들과 교류하고 공유해 온 여러 가지 감정과 같은 삶의 모든 서사이자 그러한 순간순간의 층위들이 사라지지 않고 포개진 상태의 은유적, 추상적 표상이다. 그러나 그러한 서사는 거칠고 날 것의 상태가 아니라 순화되고 정화되어 기하학적 도형의 순수성으로 귀결되어 나타난다. 그녀의 작업 과정을 살펴보자면 보일 듯 말 듯 드러나는 면들의 겹을 표현하면서도 광택이 없는 표면 효과를 위해 오일 물감을 사용하거나 아크릴 물감에 보조제를 섞어 사용하기도 한다. 짙은 암갈색을 먼저 바르고 밝은 색감의 물감을 여러 겹 반복해서 칠해 형과 색을 만들어 나간다. 각 과정에서 색은 매우 얇게 칠해지며, 아크릴 물감을 사용하는 경우에는 매번 사포질을 추가하여 광택 없이 얇고 부드러운 표면 효과를 극대화시킨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언뜻 보기에 평면 같은 회화 공간은 미묘한 겹침으로 구축된 입체의 공간이 된다. 이 모든 과정은 앞서 말한 그녀의 삶의 서사를 정화해 나가는 하나의 의식처럼 보인다. 그리고 삼각형이나 사각형의 최종적 형태는 그녀의 내면이 응축된 정화의 과정에 따른 순수성의 결정체이다.
미묘한 겹침 면의 입체 공간으로 된 작가의 내면은 은은히 그를 관통하는 빛을 통해 은밀하게 드러난다. 이 내면의 공간을 비추고 투과하는 빛은 반짝이고 일렁이는 빛이 아니라 고요하고 정적인 내재적 빛이다. 광택 없이 그윽한 빛의 투명성은 시각적 자극뿐만 아니라 촉감각적 충동을 자극한다. 부드러운 표면을 쓰다듬으며 따사롭고 조용한 빛의 세계로 들어가고 싶어지게 한다. 김미경의 회화는 결국 그녀 자신이다. 그녀는 자신의 내면을 비추는 초월적 빛을 통해 자신의 삶을 극복하려는 의지와 함께 순수성을 지향하는 자신의 마음을 가감없이 보여주고 싶어 하는 듯하다. 그리고 예술로 승화된 그녀의 회화 세계에서 우리는 그러한 마음을 보듬고 어루만지며 따뜻한 교감의 언어를 배울 수 있다.글.성신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