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RE-417, 2018, Acrylic, Pencil on Linen, 181.8 x 290.9 cm
- T-HERE-125, 2018, Acrylic, Pencil on Linen, 97 x 193.9 cm
- T-HERE-27#3, 2018, Acrylic, Pencil on Linen, 90.9 x 60.6 cm
- T-HERE-69, 2018, Acrylic, Pencil on Linen, 145.5 x 97 cm
- T-HERE-367, 2018, Acrylic, Pencil on Linen, 259.1 x 181.8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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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안갤러리 서울은 ‘숲’을 주제로 한 두 번째 전시로 대구를 기반으로 활동하며 자신만의 독특한 회화 세계를 구축해 나가고 있는 신경철 작가의 개인전
를 준비하였다. 전시는 2018년 12월 1일부터 25일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신경철의 회화는 어렴풋한 숲의 전경을 떠오르게 한다. 그러나 모노톤으로 칠해진 흐릿하고 어른거리는 듯한 형상은 현실의 숲을 묘사한 것이 아닌 우리의 의식 속에 관념화된 숲의 이미지를 구현한 것이다. 의식 속에 관념화되었다는 것은 과거에 실제로 체험했던 대상의 어떤 장면이 기억이나 추억과 같은 개인의 정신적 영역으로 구축되어 남아 있는 흔적과도 같은 것이다. 이러한 의식 속의 기억은 그 대상에 대한 영원불변하고 고정적인 이미지가 아니라 부분적으로 삭제, 배제되어 단순화되거나 실제와의 괴리를 생성하며 오류를 일으킬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이미지는 의식의 경계에서 언제든 무의식 또는 잠재의식으로 넘어가 봉인되거나 상상계를 통해 되살아날 여지를 남겨 놓는다. 왜냐하면 상상이란 실제 사건과 실질적 관련이 없다고 하더라도 완전한 무(ex nihilo)에서 유의 창조란 있을 수 없듯이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 있던 요소를 통해 발현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신경철의 회화는 이렇게 ‘서서히 소멸(evanescence)’되고 있는 어렴풋한 기억 속 풍경에 구체성을 부여하여 물리적 형상으로 탈바꿈시켜 실제계로 재소환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물리적 대상으로서의 실제 숲에서 이루어진 시각, 촉각, 청각과 같은 다각적 감각 경험과 그에 더해진 감정적, 정서적 교감과 심리적 반응의 합으로 형성된 기억 속 잔흔(殘痕)을 더듬고 그 파편들을 재조합하여 다시 물리적으로 감각 가능한 살을 입히고 전혀 새로운 의미에서의 공간을 구축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회화 공간에서 관념화된 대상을 다시 물리적으로 가시화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대상을 온전히 특정할 수 없기 때문에 형상에 대한 묘사를 통해 완벽하게 실제적인 3차원의 재현적 공간을 만들어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대상이 완전히 배제된 채로 정신성만을 강조하는 절대적인 추상 공간이 되어서도 안 될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명료한 형상을 추구하는 풍경성보다는 붓질을 통해 그려나가는 ‘행위’ 그 자체에 의미를 둔 작업 양식을 채택한다.
여느 작가를 막론하고 자신의 예술적 이론을 발전시켜 나가는 과정에 있어서 실현 양식적 방법론을 함께 고려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한편으론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신경철은 이 두 가지를 균형감 있게 고민하며 자신만의 조형 언어를 개발해 나가고 있다. 그의 작업 과정을 되짚어 보자면, 작가의 ‘행위’는 먼저 캔버스에 수차례의 석회칠과 건조 과정을 거친 후 사포로 문질러 매끄러운 표면을 획득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여기에 흰색 또는 은회색의 단색 물감으로 어떠한 붓질의 흔적이나 표현성도 감지할 수 없는 중립적 공간을 만들어 낸다. 그 후 누구나 어디에선가 본 적이 있을 법한 숲의 전경을 직접 촬영하거나 인터넷에서 찾아낸 기존 이미지를 차용하여 컴퓨터 그래픽을 통해 보정, 재조합하여 새로운 풍경을 제조한다. 이를 기준으로 흰색 바탕의 경우 은회색으로, 또 은회색 바탕일 경우에는 노랑이나 파란색 계열의 물감으로 속도감과 여러 방향성이 느껴지도록 거칠고 빠르게 칠해 나간다. 이러한 붓질 행위는 단순히 형태를 그리는 것이라기보다는 물리적 형과 색이 없는 기억의 자취를 모색하여 새로운 차원의 감각적 물질로 전환된 형상을 만들어 내는 일종의 제의적 의식처럼 보인다.
따라서 나무와 초목이 우거진 숲을 연상시키는 이러한 형상과 흰색이나 은회색으로 된 중성적 여백의 공간은 일반적인 재현적 회화에서와 같은 단순한 형상/배경의 문제를 넘어서는 새로운 화법과 미학적 수사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다시 말해서 3차원적 공간감의 표현으로서 서열화된 형상/배경의 관계라기보다는 기억의 흔적/사라진 흔적, 명확성/불명확성, 존재/부재 등과 같이 대등한 긴장감을 형성하는 다른 두 극성의 형상이자 평면 공간으로서의 상호 보완적 관계성을 이루는 것이다. 붓질의 느낌이 배제된 중성적 공간은 안개와 같이 점점 사라지는 소멸된 기억의 공간이며 그 위를 힘찬 붓질로 지나간 자리는 흔적을 더듬으며 불명확성으로 이탈되지 않으려는 처절한 몸부림의 공간이다. 상이한 두 붓질 행위는 이와 같이 기억의 부재와 아직은 존재하고 있는 기억 사이의 간극을 물리적 형상으로 표출하기 위한 작가만의 방식인 것 같다. 역동적인 거친 붓놀림의 활동성이 남긴 물감 질료의 물성과 존재성은 중성적 공백의 비활동성으로 인해 더욱더 뚜렷이 각인되며, 반대로 이 공백의 정적감은 활동성 공간으로 인해 한층 더 극대화된다. 어떤 면에서 이 여백의 공간은 소멸과 비활동성을 드러내기 위해 표현성이 거세된 ‘무형’으로서의 형상이다. 실제로 몇몇 작품에서는 형상과 배경의 구분이 모호하기도 하다.
신경철의 행위의 정점은 이 두 다른 성질의 형상에 확실성을 부여하듯이 연필로 하나하나 세밀하고 끈질기게 테두리선을 덧입히는 작업에 있다. 작가가 어린 시절 형광펜으로 낙서를 한 후 형상의 모호함을 해소하기 위해 연필로 윤곽선을 그려 나가던 단순한 놀이와 같은 행위가 자신의 예술적 영감의 단초가 되었다고 밝힌 것은 흥미로운 점이다. 그러나 그의 회화 작업에서 이 세필 과정은 더 이상 놀이가 아니라 고도의 집중력과 매우 치열한 자신과의 싸움을 요하는 행위이다. 대립되는 두 형상의 경계에 끊임없이 시선을 맞추고 의식해야 한다.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에 있는 기억의 편린들이 활동성의 자성에 이끌리듯 하나 둘 들러붙어 의식 속에 잔류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작가가 “자신의 작업을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밝히듯이 작가는 관념화된 숲속 풍경을 그리는 행위를 통해 은유적으로 스스로의 의식과 무의식에서의 정신적 상태에 대한 내성적(introspective) 태도를 드러낸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서 은회색이나 형광성 색채를 빈번하게 사용하며 반사성을 강조하는데, 이는 인지한 풍경을 비현실적으로 변환시키는 수단이다. 이는 우리가 실제 숲을 감상할 때 일렁이는 햇빛 반사광의 전반적 인상을 관념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보다 더 정확하게는 현실의 숲에서 경험한 감각적 실제가 정신적 관념의 거울을 통해 반사되어 회화라는 새로운 감각적 현실로 나타난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또한 앞서 언급했듯이 작가 자신의 정신적 내부를 투사하는 감각화된 빛의 자취이기도 하다.글. 성신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