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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Untitled, 2018, Mixed media, Dimensions variable
  • Untitled, 2017, Mixed media, Dimensions variable
  • Untitled, 2017, Apple, key, Dimensions variable
  • Leadless pencil, 2018, Wood, Mixed media, 19 x 4 x 4 cm
  • Courtesy of the artist & Leeahn Daegu © Youngha Jo
Myeongbeom Kim Interpenetration Jan 11 – Feb 27, 2018 | Daegu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물을 이용한 오브제를 통해 색다른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설치작품으로 주목받고 있는김명범 작가의 개인전 《INTERPENETRATION》이 리안갤러리 대구의 새해 첫 전시로 오는 1월 11일부터 2월 27일까지 열린다.

 

김명범 작가의 이번 전시는 개인전이자 기획전의 성격을 띠고 있는데, 그동안 작가가 선보였던 두 가지의 이질적 사물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오브제는 주로 초현실주의적 데페이즈망(dépaysement, 낯섦)으로 해석된 경향이 있다. 그러나 본 전시는 이러한 오브제에 대한 초현실주의적 관점을 지양하고 오히려 보다 깊은 현실적 사유로 이끄는 상징적 매개체로서 하나의 물질적 사물 또는 비물질적 관념의 ‘본질’에 내재하는 '양가성(ambivalence)'에 주목하여 진정한 본질의 의미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갖고자 기획되었다. 전시 타이틀인 'Interpenetration(상호침투)'은 이러한 모순적 성질이 뒤섞이면서도 독립적으로 상존하며 하나의 본질을 이루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로써 채택된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본질'은 무엇인가? 본질의 사전적 정의는 "사물 자체가 본디 가지고 있는 성질이나 모습, 또는 사물이나 현상을 성립시키는 근본적인 성질"이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어떤 사물이나 개념을 생각할 때 그 본질을 단순히 일의적(一義的)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지만 실제로는 동시에 상반된 모순을 포함하고 있거나 다의성(多義性)을 띠고 있는 경우가 많다. 헤겔은 변증법을 통해 이러한 관점의 철학적 이론을 정립하였는데, 모든 것은 그 자체로서 자기를 규정하는 본성을 가지고 있지만 스스로에 상반되는 대립적 본성을 드러내며, 이 두 대립의 사변적 계기를 통해 대립의 통일, 즉 합일을 이룰 때 진정한 본질이 드러난다고 주장한다. 모든 생명의 자기규정(自己規定)은 삶이지만 이는 곧 대립되는 규정인 죽어가는 과정이기도 하며, 생명의 진정한 본질은 결국 생사를 모두 포함한다.

 

김명범 작가는 먼저 〈Invisible Island〉와 같은 작품을 통해 ‘예술’의 의미론적, 존재론적 본질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원형의 돌출부가 있는 노란색 보도블록은 시각장애인에게는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며 실제로 존재하는 명백한 사물이지만 비장애인들에게는 불필요하며 그 존재조차 인식하기 힘든 부존재의 사물이다. 또한 작가가 미국의 길거리에서 주운 1센트 동전은 누구나 더 많이 갖고 싶어 하는 돈의 범주에 포함되는 것이 자명하지만 동시에 누구도 주으려고 하지 않는 무가치성을 지니고 있다. 결국 보도블록과 1센트 동전은 ‘예술’에 대한 상징체로 볼 수 있다. 즉 예술은 인간의 생사여부와 무관하며 삶의 필수 요소가 아니므로 예술에 관심을 두지 않는 사람에게는 무가치한 것일 뿐이지만 예술가나 예술 애호가에게는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고 또 보다 높은 이상을 제시하는 그 무엇보다도 가치 있는 것이 되기도 한다.

 

〈Rebar Cane〉이나 〈Heavy Day〉는 인간 또는 인간의 삶에 대한 작가의 본질적 고민이 드러나는 작품이다. 폐기된 철근으로 만들어진 지팡이인 〈Rebar Cane〉은 인간의 젊음과 노년, 노동력 획득, 상실과 같은 상반된 가치를 동시적으로 시각화함으로써 인간 본질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지기도 하고, 조약돌이 걸려 있는 옷걸이로 만든 〈Heavy Day〉는 하루를 대하는 삶의 자세를 말하고자 하는데, 옷걸이에 걸어 두었던 옷으로 한껏 단장을 하고 문을 나서지만 그 옷을 대체하는 삶의 무게는 돌처럼 중압감이 느껴지는 외부 자극들로 무거운 하루, 즉 우울한 하루가 될 수 있음을 상기시킨다. 즉 인간의 삶은 누구에게나 행복과 불행, 환희와 비애, 사랑과 증오와 같은 상반된 가치가 뒤섞여 있음을 다시 한 번 재고하게 한다.

 

김명범 작가는 또한 한 사물이 동시에 내포하는 물질적, 정신적 본질과 마주하게 한다. 실제 사과에 열쇠가 꽂혀 있는 작품인 〈Untitled〉는 사과는 물질로서도 존재하지만 또한 정신적 가치로서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사과는 누구나 흔하게 먹을 수 있는 과일로서 일반적으로 맛있고, 달콤하고, 아삭아삭하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한다. 이것은 사과를 보거나 먹어본 경험이 있다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물질로서의 사과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사과는 한편으론 고대 그리스·로마 신화나 성경의 선악과와 같은 상징체로 자주 등장하는 정신적 사물이기도 한데, 그렇다면 인간에 의해 부여된 가치 또한 사과의 본질일 수 있는가? 하이데거는 태양의 예를 통해 사물을 어떠한 관점에서 보는가에 따라 그 본질이 바뀔 수 있음을 설명한 바 있다. 목동의 시각으로는 태양이 지고 뜨는 것처럼 생각되지만 과학자의 입장에서 태양을 물질적으로 분석하면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돌기 때문에 태양이 지고 뜨는 것처럼 보일 뿐이며, 태양은 세상의 중심도 아니고 태양계는 더 큰 우주의 시스템 중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흔히 물질적으로만 본질을 해석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으며, 어쩌면 목동의 눈으로 본 태양이 오히려 심상적이고 상대적 본질일 수 있다. 이는 결국 우리가 사과와 같은 사물의 본질을 생각할 때 과연 그 자체로서의 물질로서 해석해야 하는지 혹은 물질을 넘어서는 정신적 가치, 즉 사물을 바라보는 열쇠를 가진 인간의 인식론적 자세에 의해 부여된 가치 또한 본질로 포함할 수 있는지 사유하게 한다.

 

〈Thorn〉과 〈Rock〉 두 작품은 각각 공간과 시간의 본질을 다루는 작품이다. 공간과 시간은 모든 실재하는 것들의 존재를 가능하게 하는 필수불가결하고 불가피한 요소이다. 우리가 공간을 수식하는 말은 넓다/좁다 또는 구획하다/경계를 넘다, 접근 가능하다/불가능하다, 공공/사적 공간 등 셀 수 없이 많지만, 이는 임의적인 공간의 본질일 뿐 실제로 공간 그 자체로서의 본질은 지각 불가능하며 나누어지지도 한계를 지을 수도 없는 것이다. 〈Thorn〉은 사적 공간으로서 접근 불가능하도록 경계를 구획하는 펜스를 접근 가능하도록 열린 공간으로 만들어 들어가고 나올 수 있도록 함으로써 이러한 공간의 본질을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한다. 또한 〈Rock〉을 통해 시간의 본질을 생각해 보면,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통적으로 흐르며 되돌릴 수 없는 공유적 본질을 갖고 있지만 모래시계 안의 모래 대신에 대체된 돌처럼 시간의 흐름은 각 존재에 따라 박제되고 정지된 시간이 될 수도 있다. 즉 어떤 존재가 태어나고 죽는 순간까지의 시간은 공유되는 시간 속에서도 그 개인에게만 부여된 고유한 시간이기도 하다. 또한 시간이 공간과 맞물리면 이러한 개인적 시간에 대한 본질은 더욱 명백해지는데, 〈Thorn〉과 같이 공간을 구획하는 작품에서 각 관객이 보내는 시간은 관객에 따라 긴 순간이 될 수도 짧은 순간이 될 수도 있다.

 

이외에도 풍선과 연필, 테이프, 차단봉과 같은 오브제로 된 설치작품들은 본질에 대한 다양한 시각과 해석이 존재함을 일깨워 주고, 그 본질은 고착된 진실이 아닌, 관객 스스로 그동안 본질이라고 생각했던 것에서 모순을 발견하여 진정한 본질에 다가갈 수 있는 길을 모색할 수 있도록 사변적인 여정을 마련해 주고 있다.

글. 성신영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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