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449, 2014, Acrylic and oil on canvas, 194 x 259 cm
- 201447, 2014, Acrylic and oil on canvas, 194 x 259 cm
- 201774(L), 201773(R) 2017, Acrylic and oil on canvas, 162 x 130.3 cm
- Courtesy of the artist & Leeahn Daegu © Youngha Jo
- Courtesy of the artist & Leeahn Daegu © Youngha J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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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성 <기계 The Mechanic>
연립주택과 공사장, 기계 그리고 자연물, 네 가지 주제의 연작을 통해 자신의 주변 환경과 공간을 회화적 언어로 풀어내는 정직성 작가의 새로운 기계 연작,
<기계 The Mechanic> 개인전이 리안갤러리 대구에서 2017년 11월 23일부터 12월 30일까지 열린다.
정직성 작가는 한 작가 노트에서 자기 회화의 특성이자 그녀가 예술 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이유로 그림을 삶의 위나 아래에 놓지 않고 ‘다른 삶의 상황들 사이에 나란히 놓고 그리는 것’이라고 했다. 이는 작가가 예술을 신성시하거나 예술에 우선권을 부여하는 것이 아닐뿐더러 삶의 부차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것도 아닌, 자신이 온전히 감내하고 살아내는 삶의 여러 조건 중의 일부이자 생활의 연장선상에 두는 예술적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따라서 정직성의 회화는 곧 화가의 예술적 정체성과 동시에 그녀 자신의 정체성을 나타낸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연립주택과 공사장 시리즈가 사십 대 초반의 화가가 사십여 차례나 이사를 다닐 수밖에 없었던 그녀의 삶의 조건과 상황들 속에서 탄생한 것과 마찬가지로 2009년에 시작된 기계 연작도 자동차 공업사를 운영하는 엔진 전문 정비사인 배우자를 만나면서 더욱 구체화 되었다. 남편의 일터를 오가며 영감을 받은 이번 전시는 특히 기계와 함께 ‘정비공’, ‘기계공’을 뜻하는 ‘The Mechanic’이라는 표제를 사용했는데, 여기에는 남편에 대한 안쓰러운 마음과 격려의 의미가 서려 있다. 젊은 시절부터 장인에 버금가는 손노동의 달인이 될 만큼 오랫동안 몸담아 온 그의 작업장이 최신 컴퓨터로 무장한 고급 프랜차이즈 공업사의 등장으로 경영상의 어려움을 겪어 문을 닫게 된 것에 대한 안타까움과 격려의 마음이다.
작가는 특히 공간에 대한 남다른 관심을 보여주는데, 이 공간은 앞서 말했듯이 그녀와 직접 연결되고 익숙한 주변 환경 공간으로서의 ‘대상화’된 공간이자 그것을 표상하는 ‘회화적’ 공간에 대한 관심이기도 하다. 비록 작가의 남편과 연관된 주제이지만 그는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그가 생활하는 삶의 공간 그리고 그 공간을 점유하는 자동차 부품과 기계가 전면에 등장하며 그를 대신한다. 사실 공간 그 자체로 보면, 공간은 형태도 색채도 없는 지각 불가능한 무한하고 무정형의 비물질적인 것으로 우리의 인식 체계 안에서 쉽게 정의 내리거나 한정 지을 수 없는 것이다. 공간에 대한 의식 주체로서 이러한 무정형의 공간을 한계 짓고, 연결하고, 구분하여 어느 정도 구체화시킬 수 있는 이유는 자연물 혹은 인공물과 같이 어떤 특정 공간이 포용하는 객체화된 요소들에 의해서 가능해진다.
다시 말해서, 작가 남편의 작업장으로서의 공간은 그 공간을 한계 짓는 건물 벽 그리고 그곳을 점유하는 여러 가지 기계와 자동차 부품 등의 요소들에 의해서 그 공간만의 물리적 특성과 원리를 드러내고 구체화되어 자동차 공업사라는 하나의 정체성을 가진 장소가 된다. 더구나 객체로서 그 공간을 채우는 기계들은 단지 공간의 물리적 현실과 특성을 규정함을 넘어서 그 요소들에 얽힌 사회, 경제적 화두를 개입시키기도 한다. 정직성은 자신이 직면하고 관조한 이러한 대상화된 공간의 시감각적 체험을 추상화시켜 빨강, 노랑, 파랑, 초록 등의 선명한 색조와 무채색인 회색 톤의 물감으로 적절히 조화시켜 과감하고 빠른 필획의 물리적 방식으로 2차원 평면의 회화 공간에 직관적으로 기록한다. 결국 객체로서의 기계 부품과 그것이 놓인 공간과의 유기적 관계를 추상적으로 회화공간에 펼쳐놓음으로써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그 공간의 소유주이자 사용 주체인 ‘기계공’, 남편이며, 이를 통해 공간은 그 주체의 가치와 계급을 반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정직성 회화의 수식어로써 ‘과거 회귀적’이라는 표현을 떠올리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연립주택 연작에서부터 이번 기계 신작까지 변화해 온 회화의 표현 양식이 마치 구상회화에서 추상회화로 전환되는 20세기 초 모더니즘 회화의 발전상을 마주하는 듯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작가의 작업을 추상화로 규정하기에 애매한 점은 엄격한 의미에서의 추상화가 대상의 부재를 담보한다면 그녀의 회화에는 대상이 살아있고 또 그 대상은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로 기능하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이번 신작에서도 비록 기계 부품들이 단순화된 형태와 복잡한 구성으로 표현되었지만, 부분적으로 어느 정도는 식별할 수 있다. 따라서 입체주의 이후 칸딘스키와 몬드리안, 말레비치에 의해 완전 추상으로 이행되기 이전의 어느 한 지점과 맞닿아 있는 ‘추상적’ 회화로 보는 것이 마땅할 듯싶다. 특히 그녀의 작품은 페르낭 레제(Fernand Léger)의 회화를 떠올리게 하는데, 레제는 대량생산 기계와 노동의 가치, 사회계급 등의 담론과 함께 추상적 회화를 실험한 화가로서 정직성의 예술적 추구와 유사성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레제가 꿈꿨던 사회주의적 유토피아는 과거에서만 통용되는 장밋빛 미래일 뿐, 현재로서는 폐기된 또는 적어도 유보된 허상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정직성의 회화는 동시에 매우 ‘미래지향적’이기도 하다. 단순히 1세기 전 과거 속 서양의 추상화 실험을 답습하는 것이 아닌 그녀 스스로도 자신의 회화를 추상화로 규정짓는 데에 주저하고 있다. 오히려 작가는 서양미술의 관점에서만 회화를 파악하기보다는 동양적 정신과 미학을 접목시켜 그녀 나름의 회화적 실험을 하고 있다. 작가는 특히 공간 속을 흐르는 기, 특히 생활의 흐름에서 나오는 기를 기계와 공간의 유기적 관계를 통해 표현하고자 했다고 한다. 그리 아름답지도 않고 오히려 차갑고 비인간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갖가지 기계와 자동차 부품들은 때로는 넓고 과감한 붓질로, 때로는 짧고 가는 필체를 통해 촘촘히 혹은 느슨하게 연결되어 다양한 물성을 드러내며 마치 인간의 장기와 같은 따뜻한 생명체로 탈바꿈된다. 이를 아우르는 공간 그 자체도 채움과 비움의 팽팽한 긴장감을 통해 그 존재성을 드러낸다. 정직성은 특히 빈 공간을 초록과 파랑, 빨강 등의 강렬한 색조의 물성을 가진 요소로 표현함으로써 이 빈 공간이 단순한 빈 공간이 아닌 기가 생동하는 공간임을 강조한다.
또한 이러한 기계의 아름다움을 통해서 작가는 노동의 가치를 재고하게 한다. 즉 레제의 시대에 이루지 못한 노동과 계층의 문제를 다시 현재로 불러들인다. 사실 이 문제는 단지 과거만의 일이 아니라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일이다. 그러나 작가는 자본가와 노동자, 계층 불균형, 소득 격차와 같은 어려운 사회적 문제들을 투쟁이나 폭력, 파괴적인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노동자로서의 계층적 자부심, 삶의 허망함이 아닌 낙관적 미래, 그리고 그를 가능하게 하는 인간의 의지와 긍정성을 기계의 아름다움으로 표상하여 드러내고 싶다고 한다. 정직성의 작품 속에 펼쳐진 각종 자동차 부품들은 기계공인 남편뿐만 아니라 노동자 혹은 회사원 등 대다수 고용자의 알레고리로서 어느 부품 하나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거나 누락되면 자동차로서 온전히 기능하지 못하듯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 즉 세상을 연결하고 연동하는 각각의 개별적 존재와 그 가치에 대한 찬미일지도 모를 일이다.글. 성신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