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onas Wood, Robin and I (Double Portrait), 2016, Oil and Acrylic on linen, 60.94 x 46.99 cm
- Lisa Ruyter, Untitled, 2010, Acrylic on canvas, 150 x 180 cm
- Markus lüpertz, Bilden Zur dt.Geschichte II, 2005-2006, Oil on canvas, 100 x 80 cm
- Wilhelm Sasnal, Untitled(After Domenico Ghirlandaio), 2016, Acrylic on canvas, 55 x 40 cm
- Katinka Lampe, 141083, 2008, Oil on canvas, 140 x 100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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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의 역사와 함께 끊임없이 재해석되어오고 있는 ‘코린토스 처녀의 전설’이 시사하듯 그림은 평면 위에서 구체적인 대상을 모방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즉 화가가 보고 경험한 것을 시각적으로 또 조형적으로 모방하는 것이 그림의 기원이었다. 그러나 회화는 그저 단순히 본 것을 그려내 어떤 대상을 지시하는 기호에 그치지 않는다. 코린토스의 소녀가 그의 연인을 계속 보고 싶은 자신의 소망을 그림으로 담아내었듯이 화가가 그려낸 그림에는 그의 생각과 감정 또는 그가 속한 시대의 정서나 염원이 담겨있기 마련이다. 이처럼 회화는 외부 대상의 형상이나 기타 이미지를 빌어 내적인 의미를 평면 위에 표현하는 예술이다.
과학 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등장한 대형 설치미술과 뉴 미디어 아트는 회화를 낡고 진부한 것으로 치부하며 그것의 종말을 예고했다. 하지만 그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 여전히 많은 작가들이 화가의 전통적인 붓질의 언어로서 회화를 고집하고 있다. 조금 오래되고 진부하면 어떤가? 평면 위에 칠해진 자국에 불과한 물감으로 때로는 단지 몇 획의 선과 몇 번의 붓질로도 자신만의 대상과 세계를 만들어 이야기를 펼쳐 보인다는 것이 놀랍지 않은가?
회화 기획전 〈PAINTING〉은 우리의 일상 세계를 캔버스 위로 끄집어내어 재해석하고 자신만의 시각 언어로 화면을 재단한 작가들을 한 데 모았다. 이들은 표면적으로는 완전히 다른 주제들을 다루고 있지만 모두 자신이 속한 현실 세계를 비스듬히 비껴보고 있다. 동시에 이들의 작업은 회화 작가들이 운명적으로 마주할 수밖에 없는 회화의 재현적 본질과 계속해서 제기되는 그 한계에 대해 반박하고 있다. 하나의 화면 위에서 이미지의 반전과 재구성을 보여주는 신경철의 ‘T-HERE’ 시리즈, 순간 포착된 인물 위에 다른 오브제를 덧씌워 여러 중첩된 이야기를 보여주는 카틴카 램프, 우리의 일상생활을 바탕으로 또 다른 시공간을 만들어 내는 리사 루이터, 작가의 그림 속 풍경이 또 다른 이미지를 품고 있는 조나스 우드, 대상의 과감한 생략을 통해 관객들에게 물음을 던져주는 빌헬름 사스날 등 화가의 가장 본질적인 언어인 붓질로써 회화의 종말 선언을 정면으로 마주한 9명의 작가 각각의 대표작 24점을 선정했다.
리안갤러리는 이번 전시를 통해 물감과 붓 자국을 통해 펼쳐진 캔버스 표면 그 너머의 ‘작가가 바라본 세계’를 들여다보기를 제안한다. 하얀 캔버스 앞에서 끊임없이 사유하고 탐구했을 작가들의 작업을 통해 그동안 우리가 결코 쉽게 마주할 수 없었던 우리 주변의 또 다른 세계를 경험하기를 기대한다. 이는 관객들에게 일상적 사물을 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특별한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네모난 캔버스 공간을 통해 관객들이 더 많은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다면, 자신이 사랑하는 회화가 죽은 것이 아님을 증명하고자 하는 많은 작가들의 치열한 노력이 있다면 우리는 회화의 또 다른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가능성이 존재하는 한 회화는 여전히, 또 오랫동안 살아 숨 쉴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