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urtesy of the artist & Leeahn Gallery Daegu © Youngha J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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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호는 극도로 절제된 색과 형태를 통해 철학, 종교 그리고 자신의 경험을 작품에 녹여내고 있다. 주로 색면 페인팅이 전체적인 작업 조형의 기본을 이루며 이는 단순화된 꽃, 새, 의자 등 모호한 형태의 이미지가 그려진 캔버스들과 조합된다. 김태호의 작품은 작가의 의도가 담긴 내용과 주제의 메시지를 직설적으로 전달하지 않는다. 은유와 상징을 직접 전달하지 않고 다양한 형태의 색면과 기호화한 이미지, 때로는 여러 화면을 병치시킨다. 내용과 형식의 다양한 층위를 아우르는 혼성 이미지를 연출해 관객이 상상력을 동원하여 교감할 수 있게 한다.
1991년경부터 작가는 화면 가득히 은색을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가벼워 흩어지기 쉬운 은분을 사용하여 여러 번 채색하고 겹겹이 쌓아 올리거나 저절로 흘러내리게 한다. 파스텔 톤과 펄감이 적절하게 섞인 안료들을 수 십 번씩 쌓아 올려 깊은 곳에서부터 아련한 색을 발산하는 아름다운 표면이 특징이다.
김태호의 회화는 그 외양은 단색조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몇 겹의 물감 층을 두텁게 쌓아 올려 물질의 입체감과 무게감을 가질 정도로 질료적이다. 여러 차례 색을 쌓아 올리는 과정에서 파생하는 소재 자체의 내재율, 즉 모호함의 은은한 느낌이 있는 듯 없는 듯한 시각적 불편함과 긴장감을 유발한다. 이 모호함의 아우라는 관람객으로 하여금 기존의 추상 법칙에 따른 의미, 문맥, 비유를 상실하게 하며 작가가 의도한 느낌과 정서를 희미하게나마 맛보게 한다.
작가는 지하 전시장 바닥 전체에 검은 거울을 설치하고 그 벽면에는 은은한 모노톤의 대형 캔버스를 걸었다. 차가운 거울은 캔버스가 발산하는 따뜻하고 밝은 색을, 캔버스는 거울이 발산하는 차갑고 어두운 색을 서로 흡수하며 한 덩어리가 되는 설치 작업이 연출되었다. 작가는 이와 같은 조합을 단순히 이미지들을 병합하는데 그치지 않고 전체 전시 공간에 하나의 큰 부분으로 구성하였다. 이는 이번 전시의 전체 개념을 아우르는 모호함을 위한 일종의 무대 효과와도 같은 조형적 장치인 셈이다.
김태호는 직설법을 사용하지 않는 작가이다. 그는 모호하고, 경계가 애매하며, 신비스러우며, 보이지 않지만 보이고, 들리지 않지만 들리는 것들에 대해 관심을 가진다. 김태호 그림의 의미는 금방 알기 어렵지만, 작가는 관람객들이 그 의미를 쉽게 이해하기 보다는 모호하게나마 느끼고 사색하기를 기대한다. 작가 특유의 미니멀한 표현법, 모호한 색상과 이미지의 절제, 신비스러운 전시 공간 연출 방법 등을 통해 관객들이 일종의 명상과 같은 정신적 여유와 사유의 시간을 가지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