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 김수영 기자
2009.10.23
'암 투병' 이명미씨 7년만에 첫 전시회
화폭 위에 던진 '농담'…세상과 소통 시도
"그녀가 돌아왔다!" 작가 이명미(59)가 2002년 개인전 이후 오랜 암 투병 끝에 7년 만에 리안갤러리에서 전시회를 연다. 전시를 앞두고 만난 작가에게 "기사 첫 문장을 어떻게 쓰면 좋겠느냐?"고 물었더니 대뜸 "그 X이 돌아왔다"로 쓰라고 했다. 과연 이명미답다. '대구문화' 임언미 편집장은 이번 전시에 관한 글에서 "화가 이명미는 함께 있는 사람을 즐겁게 만드는 힘이 있다. 만난 지 오래지 않은 사람도 금세 친근하게 만드는 친화력이 있다"고 썼다. 맞는 말이다. 작가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장난기가 넘쳐서 곁에 있는 사람 옆구리를 쿡쿡 찌르고 싶고, 호기심이 많아서 이것저것 알고픈 것 하고픈 것이 넘쳐난다"고 했다. 나이는 정말 숫자일 뿐이다.
그림 이야기로 넘어가자. 23일부터 다음달 14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의 제목은 '캐러셀'(Carrousel). 놀이공원에 있는 회전목마다. 하지만 이번 전시에서 캐러셀은 놀이공원의 관람차를 일컫는다. 지면과 가까운 곳부터 먼 곳까지 회전하며 일상의 이미지를 전혀 낯설게 볼 수 있게 만드는 놀이기구. 사실 작가도 자신의 작품과 작업에 대해 '놀이'(Game)라는 표현을 즐겨 쓴다.
리안갤러리 김혜경 큐레이터는 "대상에 대한 치열함과 긴장감 대신 툭툭 던지듯 포착되고 묘사된 화면 위로 작가가 던져놓은 농담은 긴장과 신경전 대신 삶에 대한 여유와 해학이 자리하고 있다"고 표현했다. 그림이 전시된 갤러리는 화사하다 못해 장난스럽기까지 하다. 개를 닮은 한 동물이 내뱉는 말 풍선(마치 만화처럼 그려진) 속에는 보들레르의 시를 인용해 '내 사랑 나의 누이여'라고 적혀있다. 존 덴버의 노래 가사 '선샤인 온 마이 숄더'(Sunshine on my shoulder) 또는 가곡 '돌아오라 소렌토로'의 한 구절인 '그리운 저 빛난 햇빛'도 그림 속에 담겨있다. 작가는 "그림 속에 글을 집어넣는 것은 그 옛날 서화에서 이미 도입된 기법일 뿐"이라며 확대 해석을 거부했다. 하지만 이런 기법 속에는 작품을 통해 관객과 소통하고픈 작가의 간절함이 담겨 있다. 이명미는 "내 그림을 본 관객이 배꼽을 잡고 웃던지, 눈물을 주르르 흘리게 하고 싶다"며 "하지만 매번 작품을 마칠 때마다 한계와 부족함을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얼핏 놀이와 장난처럼 보이는 그의 그림을 한 꺼풀 벗겨 보면 지독한 외로움과 소통에 대한 갈망이 담겨있다. 아픔이 많았던 작가이지만 그 고통 속에 숨 죽여 흐느끼기보다는 세상을 향해 두 팔을 벌리는 쪽을 택했다. 혼자 고독해 하기에는 그의 천성이 너무 밝다. "한때 미술 사조가 흑백으로 치닫고 그것이 대세일 때도 있었죠. 그런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과 어울리기도 했지만 마음속에는 노란색과 분홍색이 꿈틀대는 겁니다. 그 색들을 어떻게 가만히 놔 둡니까?" 이명미는 무척 신중하고 대화를 즐기는 사람이다. 농담처럼 건넨 한마디에도 신중하게 생각하고 여유롭게 대화를 풀어낼 줄 아는 지혜를 지녔다. 작가는 2011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앞두고 경북대병원에 서 있는 30m 높이의 굴뚝을 작품으로 꾸미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언젠가 능력과 시간이 된다면 동양화를 그리고 싶다는 작가 이명미. 7년 만에 돌아온 그의 작품은 새로운 기쁨을 주지만 앞으로 그가 어떻게 변화할지를 고대하는 것은 더 큰 즐거움이다.
https://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10/23/200910230014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