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 이경달 기자
2014.08.26
엄마…엄마…이렇게라도 함께 있고 싶어
리안갤러리는 이탈리아 출신의 젊은 작가 모이라 리치를 초청, 28일(목)부터 9월 27일(토)까지 국내 첫 개인전을 연다.
이번 전시에서 모이라 리치는 자신의 대표작 ‘20.12.53-10.08.04’ 시리즈 50여 점과 비디오 작품 등 60여 점을 선보인다. 작품 ‘20.12.53-10.08.04’에 등장하는 숫자의 정체는 모이라 리치 작가의 어머니가 태어난 날과 사망한 날이다. 작가는 2004년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한 어머니를 애도하기 위해 어머니 사진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장롱 깊숙이 들어 있는 앨범에서 꺼낸 것 같은 사진 50여 점에는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작가의 감정이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다.
작가가 10년에 걸쳐 만든 ‘20.12.53-10.08.04’ 시리즈에는 어머니의 모습을 관찰하고 있는 현재의 모이라 리치의 모습이 한결같이 등장한다. 작가는 당시 분위기에 맞는 옷을 입고 사진을 찍은 뒤 옛 사진과 합성하는 방법으로 시`공간을 초월해 어머니와의 만남을 성사시켰다. 사진에 등장하는 모이라 리치의 표정은 어둡다. 젊은 시절, 친구들과 어울려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어머니 옆에서 딸인 작가는 애처로운 눈길로 어머니를 바라보고 있다. 한껏 아름다움을 뽐낸 어머니의 독사진 옆에도 어김없이 딸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어머니를 응시하고 있다. 여기에는 현실에서는 더 이상 어머니를 볼 수 없다는 상실감과 슬픔이 내재되어 있다.
모이라 리치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현실로 뛰쳐나오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이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작가는 가상으로 나마 어머니와 같은 시`공간을 공유하며 어머니의 삶을 돌아보고 어머니의 존재를 추억한다. 모이라 리치는 “어머니와 함께하고 싶은 마음을 표현했다. 내가 슬픈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은 어머니가 더 이상 이 세상에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부모의 죽음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승화시킨 작품 ‘20.12.53-10.08.04’ 시리즈에는 각각의 부제가 붙어 있다. 그 중 하나가 ‘자화상’이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여성 특유의 섬세한 감각으로 풀어낸 자전적 작품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화상’은 ‘20.12.53-10.08.04’ 시리즈 전체를 아우르는 부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편 사진과 비디오 작업을 하는 모이라 리치는 밀라노 브레라 아카데미와 바우어 스쿨 오브 포토그래피에서 수학했으며 가족 간의 관계와 정체성, 그리고 이러한 관계가 형성되는 친밀한 공간인 가정을 주제로 한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2000년 밀라노 현대사진미술관이 주최한 리카도 페자상을 받았다. 053)424-2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