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조두진 기자
2013.11.15
소쿠리를 따라 갔더니 잊고 있었던 공간이 불쑥
"미끼 혹은 삐끼!"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설치미술가 최정화 씨가 자신의 설치작업을 소개하는 말이다. 물고기를 유혹하는 미끼이자 손님을 끄는 유흥업소의 삐끼라는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의 작품은 큰 행사가 시작되기 전에 먼저 설치되어 관람객들에게 ‘이제 곧 무슨 커다란 행사가 열리겠구나, 볼만한 게 있겠구나’하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물론 단순히 손님을 끄는 행위를 넘어 설치예술 그 자체로도 예술적 가치를 지닌다.
이달 7일부터 12월 29일까지 리안 갤러리와 갤러리 건너편 건들 바위 윗동네(명륜길)에서 열리는 ‘생생활활’전 역시 그런 맥락에서 접근해볼 수 있다. 이파리가 반쯤 떨어진 길거리 가로수에 형형색색의 소쿠리가 걸려 있다. 어떤 소쿠리는 남의 집 옥상에 위성처럼 걸려 있고, 어떤 소쿠리는 아이들처럼 옹기종기 모여 와글와글 떠들고, 과일 모형은 꼬치처럼 꿰어 솟대처럼 서 있다.
미끼이자 삐끼인 소쿠리를 따라 들어가면 “아! 작가는 이걸 보여주고 싶었구나. 여기로 나를 데려오려고 했구나” 싶은 충격을 느끼게 된다. 최정화 씨의 소쿠리를 따라간 곳에는 대구라는 같은 공간에, 동시대를 살고 있지만 잊었던 공간이 펼쳐졌다. 분명히 존재하고 있으리라 짐작은 했지만 잊었던 공간 말이다.
관람객은 최정화 씨의 작업을 통해 잊었던 공간으로 들어가고, 명륜길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은 지척에 두고도 들어가 본 적이 없었던 ‘리안 갤러리’로 들어간다. 그러니까 그의 이번 설치작업은 일상 인을 예술의 공간으로 들여보내고, 2013년의 도시인을 1980년대로 돌려보낸다. 까닭에 이번 전시는 ‘시간여행이자 공간여행’처럼 느껴진다.
이번 전시는 작가 최정화 씨와 대구 지역 대학생들의 협업인 동시에, 최정화 씨와 명륜길 동네와 주민들이 공동으로 펼치는 ‘미완성 작업’이다. 관람객이 이 마을에 도착하는 순간 작품은 완성된다. 그리고 새로운 관객이 도착하면 또 새롭게 완성된다.
053)4244-2203.
조두진기자